[특별기고]임당유적지 발굴은 끝났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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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경북 경산시를 가로지르는 금호강 연안의 비옥한 평야 사이에 낮게 깔린 구릉 곳곳에서 우리는 선사이래 조상들이 살았던 흔적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학계에서 임당유적지로 통하는 곳이다.

10년동안 이 지역의 발굴에서 얻은 인골은 6백여구. 마치 화석처럼 가지런한 모습으로 발굴된 유골도 더러 있었다.

이들 유골 등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남성들의 평균신장이 1백62.5㎝나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남성들의 키와 비교해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3분의 1정도는 성년 (20세) 이 되기 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체적인 질병은 확인할 수 없지만 악성빈혈로 사망한 20대 중반의 남성도 있었고 작은 금동관에서는 젖니가 남은 어린아이의 유골도 확인됐다.

기원전 2세기부터 1천여년에 걸친 사람들의 흔적은 경북 경산시의 대동과 조영동, 부적리 등에서 고루 발견된다.

1천6백여기의 무덤들과 1백50여채에 달하는 집터, 연못.우물.목책토성.저습지등 다양한 유적이 집중 분포되어 있어 해방 이후 우리 고고학계가 접한 가장 소중한 유적으로 꼽힌다.

이 곳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 에 짤막하게 나와 있다.

경산지역에 '압독국 (押督國)' 이 있었다는 기록이 그것. 압독국이 신라에 복속되는 과정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삶을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자료들이다.

영남대 박물관과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 한국문화재보호재단 3개기관이 발굴한 유골들로부터 당시 성행했던 순장의 풍습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유골외에 이 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2만여점에 이른다.

그 중에는 금동관 10여점과 각종 관장식, 허리띠꾸미개, 순금귀걸이 등 화려한 장신구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10년에 걸쳐 60여억원의 예산으로 찾아낸 이 자료들은 3개 발굴기관에 나뉘어 보관되어 있다.

전문박물관을 건립해 이들을 한 곳에 모아 전시 보관해야겠고, 전문가를 양성해 체계적으로 정리.분석하고 타지역 자료들과 비교연구하여 당시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밝혀 내야 할 것이다.

임당유적의 발굴은 끝났지만 이제부터 시작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셈이다.

양도영 연구관 <영남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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