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도시인의 삶] 공공근로 벌목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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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톱질이 시작된 지 10여 분, 30m가 넘는 아카시아가 쓰러졌다.

“우리 식구들, 빨리빨리 움직이자고.” 현장반장 이영희(60)씨가 소리치자 18명의 팀원이 쓰러진 나무 곁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25일 서울 관악구 선우배수지공원 일대 숲 가꾸기 현장에서 공공근로자들과 함께 임주리 기자(中)가 무게 10㎏짜리 동력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있다. [사진=김상선 기자]


25일 오전 10시 서울 관악산 자락 선우배수지 공원 일대. 해발 50~60m에 불과한 야트막한 뒷산에선 벌목이 한창이었다. 서울시 공공일자리 사업 중 하나인 ‘숲 가꾸기’ 현장이다. 관악구 소속 42명은 3팀으로 나뉘어 오전 9시에 이곳에 모였다. 30여 년 된 아카시아를 베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트럭에 싣는 것이 이들의 일이다. 이들과 뒤섞여 작업에 참여해 봤다.

키가 30m를 훌쩍 넘는 나무를 베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우선 밧줄에 매단 손가락 하나 크기의 납덩이를 나무 위로 던져 고정하고, 밧줄의 다른 끝은 옆 나무에 단단히 얽어매야 한다. 나무가 아무 데로나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현장반장의 톱질에 나무가 쓰러지면 팀원들은 잔가지를 쳐내고 나무를 1~2m 간격으로 자른다. 뿌옇게 날리는 톱밥에 눈이 따가웠다. 무게 10~20㎏씩 나가는 기계톱 소리는 귀를 때렸다.

이곳에 나온 지 한 달 됐다는 김종운(64)씨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일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워요.”

6년 전까지만 해도 김씨는 상자 제조 공장의 공장장이었다. 한길만 밟아 온 덕에 작은 집 한 채도 마련했다. 그러던 2001년의 어느 봄날,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밥을 떠먹여 주고 대소변을 받아야 했다. 회사 일을 병행할 수 없어 결국 사표를 냈다. 7여 년의 병 수발에 재산이 바닥난 지난해 겨울, 아내는 떠났다.

“일하면 아내에 대한 그리움도 잊지요.” 톱밥가루가 뿌옇게 내려앉은 그의 안경 너머로 눈물이 어른거렸다. 공공근로자 모집 공고를 봤을 때는 생계가 막막해질 즈음이었다. 삭신이 쑤시고 날리는 톱밥에 기침도 잦지만 그는 빠지지 않고 열심히 나온다.

숲 가꾸기 사업에 나오는 이들은 김씨와 사정이 비슷하다. 지금은 ‘숙련 기술자’가 된 이 반장도 한때는 잘나가는 건설업체 사장이었다. 집도 차도 남부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엄청난 빚을 지고 일용직을 떠돌다 이곳으로 왔다. “이걸 해야 하나” 하는 자괴감에 좌절하기도 했다. 이제는 “사람들과 몸을 부딪치며 일하면서 사는 게 뭔지 알았다”고 말한다.

양모(49)씨는 지난해 가을 몸담았던 해운업체에서 구조조정을 당했다. 백방으로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면접 한 번 보지 못했다. 경력은 나이 제한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넥타이를 매던 그에게 톱은 낯설었다. 하지만 “어쨌든 내 손으로 돈을 번다”며 고마워했다. 양씨는 아직 해고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 이날도 아내가 곱게 다려 준 양복을 지하철 신림역 사물함 안에 두고 왔다.

낮 12시, 점심시간이 되자 삼삼오오 길가에 모여 앉아 가방에서 싸 온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냈다. 1000원어치 빵과 우유를 싸 온 이도 있었고, 밥에 달랑 김치만 싸 온 이도 있었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가까운 집으로 갔다 오는 사람도 더러 보였다.

오후가 되자 트럭이 올라와 베어 놓은 나무를 실어 갔다. 잘라 놓은 나무를 직접 들어 보려는데 무게가 30㎏이나 나갔다. 10여 명으로 구성된 한 팀이 하루 베고 나르는 나무는 5~10그루. 이들의 땀이 떨어진 곳에는 소나무가 들어선다.

공공근로자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고 받는 돈은 교통비와 식비를 합쳐 4만5000원. 톱질을 하고 잔가지를 치고 잘라 트럭에 옮겨 실은 대가다. 김영수(가명)씨는 “한 달에 버는 돈은 80만원 가량 된다”며 “1년 이상 고용이 보장된 것이 아니어서 벌써부터 막막 하다”고 털어놨다. 관악구청 채인석 공원녹지팀장은 “일이 힘들다 보니 3~4일 나오다 안 나오는 사람이 20% 정도 돼 대기자 명단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올해 마련된 공공일자리는 10만여 개. 숲 가꾸기(700여 명)를 포함해 노인 돌보기, 문화재 관리, 쓰레기 처리 등 다양하다. 월급은 보통 80만~100만원 선이다.

임주리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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