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C 3.5 시그니처, 크라이슬러의 차체에 벤츠의 변속기·하체 ‘융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4면

 300C는 크라이슬러의 최고급 세단이다. 미국에선 C를 뺀 300이란 이름으로 팔린다. 크라이슬러의 원조 300 시리즈는 1950~60년대를 주름잡았던 고성능 차였다. 60년에 나온 300F는 400마력을 냈다. 65년 300L을 마지막으로 명맥이 끊겼던 300 시리즈는 99년 300M을 앞세워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리고 2003년 300C가 그 뒤를 이었다.

300C는 미국과 독일의 혼혈이다. 크라이슬러의 차체를 쓰지만 변속기와 하체는 한 세대 전 벤츠 E-클래스에서 가져왔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가 합병해 낳은 결실인 까닭이다. 이제 두 기업은 헤어져 남남이 됐지만 300C는 아직도 남아 양사 합병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이번에 시승한 차는 반짝이는 그릴과 가죽 인테리어로 한껏 멋을 낸 300C 3.5 시그니처로 가격은 5880만원이다.

위풍당당. 300C의 첫인상이다. 요즘 경쟁적으로 차를 날렵하게 빚어내는 통에, 투박하고 큼직하게 만들어낸 300C의 모습은 되레 톡톡 튄다. 크롬을 씌운 벌집무늬 그릴엔 햇살이 걸려 반짝반짝 빛을 낸다. 300C는 크고 각지고 번쩍거리는 고급차의 이미지와 고스란히 겹친다. 그래서 아련한 향수와 막연한 동경을 자극한다.

덩치만큼 넉넉한 실내는 결이 고운 가죽과 까슬까슬한 감촉의 알칸테라(스웨이드의 질감을 재현한 인조섬유), 깊은 질감의 나뭇결무늬 패널로 꾸몄다. 정갈하면서 고급스럽다. 굵직한 와이퍼 스위치나 얇은 크루즈컨트롤 레버, 좌우로 흔들어 기어를 바꾸는 변속 레버는 영락없는 벤츠 부품이다. 300C 3.5의 엔진은 V6 3.5ℓ 250마력, 변속기는 자동 5단이다.

가속에선 별다른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평범하다. 그러나 운전 감각은 뜻밖이다. 운전대는 묵직하고 하체는 탄탄하며 핸들링은 예리하다. ‘미국차는 물렁거린다’는 편견에 일침을 날린다.

남성적 기질이 다분한 크라이슬러의 외관과 노련하고 치밀한 벤츠의 기술은 의외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문제는 크라이슬러와 다임러가 이제는 헤어진 상태여서 이 매력적인 조합의 자동차가 계속 나오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월간 스트라다=김기범 기자 cuty74@istrada.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