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넘어져도 벌떡 … 초등생 때부터 지곤 못 사는 ‘악바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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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시상식 도중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경기장에 나온 LA 교민들도 애국가를 합창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은 축하전화를 걸어 “어려운 시기에 국민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줬다”고 치하했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정말 악바리 연습벌레였어요. 점프 연습을 하도 많이 해 제가 손으로 세다가 지쳐 그만뒀어요.”

주니어 시절 김연아를 가르쳤던 신혜숙 코치에게는 잊지 못할 기억이 한 가지 있다. 김연아가 중학생 시절이었다. 신 코치는 “트리플 러츠를 하도 많이 뛰기에 손가락을 꼽으면서 세 봤다. 65회까지 세고 포기했다. 다른 점프도 더 뛰었으니 100회도 넘는다. 다른 선수들은 같은 시간에 그 반도 못 뛴다”며 “자기 할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하는 ‘똑순이’였다”고 기억했다. 3년 전 스케이트 부츠가 발에 맞지 않아 스케이트를 그만두려고까지 했던 이 소녀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 은반의 여왕이 됐다.

◆미셸 콴 따라 하며 꿈 키워=김연아는 여섯 살 때 집 근처 과천시민회관 실내링크에서 스케이트 부츠를 처음 신었다. 방학 특강반에 등록한 김연아는 금세 피겨에 흥미를 느꼈다. 당시 ‘피겨 여왕’ 미셸 콴의 비디오를 보며 흉내 내곤 하던 김연아는 피겨를 그만두자는 어머니 박미희씨에게 “정말 스케이트를 타고 싶어요”라며 졸랐다. “연아처럼 재능 있는 아이를 처음 본다”는 코치의 말에 어머니는 고집을 꺾었다.

◆지는 걸 못 참는 꼬마=어머니 박씨는 “연아는 어릴 때부터 욕심이 남달랐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 김연아는 한참 나이 차가 나는 국가대표 피겨 선수들과 함께 레슨을 받았다. 김연아는 그 언니들과의 경기에서도 악착같이 이기려고 했다. 주변에서는 김연아를 ‘지는 걸 못 참는 꼬마’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김연아는 화가 나면 얼음을 스케이트 날로 찍는 버릇이 있었다. 빙판이 상하면 다른 선수들이 스케이트를 탈 때 위험하기에 박씨는 버릇을 고치기 위해 스케이트를 벗기고 “빙판 주변 100바퀴를 돌라”고 벌을 내렸다. ‘얼마 돌다가 잘못을 빌겠지’ 하는 심정에서였다. 하지만 연아는 헉헉대면서도 끝내 100바퀴를 다 돌았다. 박씨는 ‘다시는 100바퀴 벌을 써먹을 수 없겠다’고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탄탄한 기본기의 결실=김연아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악셀을 제외한 다섯 가지 트리플 점프(플립·루프·토루프·살코·러츠)를 다 뛰었다. 김연아의 완벽 연기는 이처럼 ‘교과서 점프’로 기본을 다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점프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김연아는 경기에서 감정의 표현과 연기, 음악과의 조화 등 점프 외 부분에 좀 더 신경 쓸 수 있었다.

SBS 방상아 해설위원은 “무엇보다도 김연아가 특별한 것은 편견에 맞서 싸운다는 점이다. 내가 선수였을 때 해외 대회에 나가면 한국에서 태어난 걸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연아는 ‘피겨 후발국’ 한국 선수를 향한 모든 편견에 맞서고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이제는 그로 인해 한국 관계자들이 대접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로스앤젤레스=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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