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레닌이 누구죠"…잊혀진 러시아 공산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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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80년전인 1917년 11월7일 러시아 볼셰비키들은 공산혁명을 성공시켰다.

이후 지난 91년 소련이 멸망할 때까지 소련은 물론이고 전세계 공산주의 국가들은 이날을 기념해 대대적인 행사를 거행했고 신혼부부들은 레닌묘 참배를 일생의 영광으로 알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제 지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에 불과하다.

91년 이후 슈콜라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과거 아버지.어머니들이 가슴에 새기다시피 외웠던 레닌의 행적에 대해서는 고사하고 레닌이 누구인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학교에서 이미 레닌은 교과서 밖의 인물이 돼버린 것이다.

겐나디 주가노프 러시아 공산당수는 최근 볼셰비키 혁명 80주년을 앞두고 혁명의 불길이 최초로 타올랐던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방문, "이미 혁명의 시대는 지났다.

더이상의 혁명은 피해야 한다" 고 선언해 혁명노선의 포기를 선언했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공산당의 존립기반 자체가 없어질 것이란 위기감에서 나온 발언이다.

물론 이런 흐름에 반발하는 움직임도 없지 않다.

1924년 사망한 레닌이 아직도 크렘린 앞 마브졸레이 (레닌묘)에 누워 붉은 광장의 주인노릇을 하듯 러시아에는 아직도 당시 혁명의 열정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게 사실이다.

레닌묘 이전.이장계획에 격렬히 반대하는 세력들이 바로 그들로, 그들에게는 비록 사후 장기 (臟器)가 적출되고 뇌가 연구를 위해 3천조각으로 갈라진 껍데기 뿐인 레닌일지라도 마브졸레이 속의 레닌은 여전히 숭배의 대상이다.

레닌 시신관리에 러시아정부는 이제 손을 놓고 있다.

대신 '레닌묘 자선기금' 이란 민간단체가 올해의 경우 1만7천달러 (약 1천6백만원) 를 모금해 빠듯하게 레닌묘와 시신을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세상은 변했고 바로 이 모금액의 다소 (多少) 야말로 앞으로 러시아혁명에 대해 러시아인들이 갖는 의미를 재는 바로미터가 될지도 모른다.

모스크바 = 김석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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