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에 연지 바른 화랑들이 한국 원조 꽃미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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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호 20면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석탄 가루(콜·kohl)가 들어간 화장품을 가느다란 막대기에 붙인 뒤 속눈썹에 발랐다. 이것이 기원전 4000년께부터 전해 오는 마스카라의 한 종류다. 전문가들은 클레오파트라의 이런 매혹적인 눈 화장이 로마의 카이사르를 사로잡은 비결이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클레오파트라를 놓고 ‘화장 미인’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화장의 역사

그러나 화장에서 최고의 호사를 누린 사람은 따로 있다. 로마 황제 네로(재위 54~68)의 아내 포파에아 사비나다. 사비나는 벌꿀, 곡물 가루, 빵 부스러기 등을 섞어 뷰티 마스크를 만들었다. 워낙 독특한 마스크여서 후대 사람들은 이를 ‘포파에아 마스크’라고 불렀다. 밤새 호화로운 마사지를 받고 난 다음 날 아침에는 나귀의 젖으로 그 마스크를 닦아냈다.

그녀는 또한 나귀 젖, 요즘으로 치자면 우유로 목욕을 한 문헌상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로마 역사서 '박물지'는 “나귀 젖은 얼굴의 주름을 없애고 하얀 피부를 유지시켜 준다”고 적고 있다. 사비나는 평소 500여 마리, 여행할 때 50여 마리의 암나귀를 미용용(用)으로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서양에서 ‘멋쟁이 여성’이 나타난 것은 십자군 전쟁 덕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자들이 오랜 기간 집을 비우자 부인이 ‘여주인’으로 부각되면서 화장술이 크게 발달했다. 14세기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피에트로 파도웨 교수는 ‘몸을 씻는 법’ ‘입술을 아름답게 가꾸는 법’ ‘이를 하얗게 하는 법’ 등 세계 최초의 미용학 강의를 열게 된다.

화장은 인류 역사와 궤를 같이했다. 인체의 아름다운 부분을 돋보이도록 하고 약점이나 추한 부분을 가리고 싶어 하는 욕망은 인간 생래의 것이라는 본능설, 신분·계급·종족·성별을 구별하기 위한 치장이 미화 수단으로 발전했다는 신분 표시설, 주술적·종교적 필요에 의해 화장이 발달했다는 주장 등 다양한 견해가 있다. 이처럼 시공을 뛰어넘는 인류의 보편적인 행위, 화장은 어원 역시 거창하다. 영어 ‘cosmetics’는 희랍어 ‘kosmetikos’에 뿌리를 두고 있다. ‘우주의 명령’이라는 뜻이다. 화장은 ‘우주의 명령을 받아 인간들을 아름답게 가꾸어 보기 좋게 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화장이 주요한 의식이었음을 보여 준다.

한국도 비슷했다. 서기 1세기께 부여와 이웃해 있던 읍루에는 “겨울에는 돼지기름을 두껍게 몸에 발라 추위를 막았다”는 기록이 있다. 말갈에서는 피부를 희게 하기 위해 오줌으로 세수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피부 보호에서 시작해 화장으로 발전한 것이다.

보편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 남자들도 조선 중기 이전까지는 화장을 했다. 일부는 귀고리를 하기도 했다. 그중에서 가장 화려했던 계층은 신라의 화랑도로 알려져 있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신라의 화랑은 잇꽃(홍화)으로 연지를 만들어 이마와 뺨·입술에 바르고 산단(山丹·백합꽃의 붉은 수술)으로 분을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원조 꽃미남’은 1500년 전 화랑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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