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과 도란도란] 숫자로 판단하기 어려울 땐 주변을 보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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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호 26면

영화 얘기로 시작해 보자. 올 아카데미의 최대 화제작은 ‘슬럼독 밀리어네어’. 인도 빈민가 출신 소년이 퀴즈쇼에 출연, 우승한다는 내용이다. 소년이 모든 문제의 정답을 맞힐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게 그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도 경제지표보다 사소한 일상이 가끔은 정답을 맞히는(증시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증권사 직원의 결혼 인기도 순위가 그렇다. 증권맨이 배우자감 1순위가 되면 증시가 꼭지라는 신호다. 순위가 추락했다면 바닥에 다가섰다는 방증이다.

2002년 10월 증권가 메신저에 ‘결혼 상대 인기순위’라는 제목의 글이 돌았다. 증권맨에 대한 여성의 선호도가 포장마차 주인에 이어 53위에 머물렀다는 내용이었다. 최근 만난 한 증권사 직원은 “그때 남편감 순위로 증권맨은 마네킹 뒤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는 코스피지수 500 선이 무너질 정도로 증시가 침체됐다. 이후 증시는 등락을 거듭하다 이듬해 봄부터 본격 상승, 꼭 5년 뒤 코스피지수 2000을 돌파했다.

2007년 말 증권맨은 여성이 선호하는 배우자 직업 1위에 등극했다. 공무원·의사·변호사를 모두 물리쳤다. 알다시피 이후 증시는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최근 결혼 시장에서 증권맨의 인기는 다시 시들해졌다. 구조조정에 임금 삭감 대상이 된 데다 개인적으로 투자한 돈까지 날린 증권맨이 많다 하니 당연해 보인다.

‘휴먼 인덱스’라는 것도 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으로 증시를 예측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대표적인 게 ‘곰의 항복선언(Bear Capitulation)’이다. 비관론자가 낙관론으로 전환하면 강세장 끝물이라는 신호란다. 2007년 4월 증권가 족집게로 유명했던 한 애널리스트가 비관론에서 낙관론으로 돌아서자 조만간 상승세가 꺾일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이후에도 증시는 상승세를 이어가기는 했지만 그해 10월을 기점으로 흐름이 반전됐다.

피터 린치는 이처럼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투자 아이디어를 ‘칵테일 이론’으로 정립했다. 린치는 1977년부터 13년간 펀드를 운용하며 한 해도 마이너스 수익을 낸 적이 없는 전설적인 펀드 매니저다. 그는 칵테일 파티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증시 상황을 분석했다. 파티장에 모인 사람들이 펀드매니저는 쳐다보지도 않고 치과의사와 충치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면 조만간 증시가 침체기에서 반전되리라는 징조다. 반대로 모든 사람이 주식 얘기를 하고 왜 빨리 투자하지 않았는지 후회한다면 곧 증시가 꼭지를 찍고 내려갈 것이란다. 린치는 “대다수가 주식을 거들떠보지 않을 때가 주식을 사야 할 때고, 반대로 주식을 최고의 화제로 올리는 순간이 주식을 팔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미국 다우지수가 8000 선에 바짝 다가섰고 코스피지수는 (장중이라도) 1250 선을 돌파했다. 낙관론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그래도 불안하다.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면 주변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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