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개혁-뉴질랜드·호주를 가다]下. 정부부처 차관도 국내외공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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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담배인삼공사 사장에 일본인 아무개씨 임명. ' 한국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호주나 뉴질랜드에선 이런 일이 다반사다.

호주 최대 공기업 '텔스트라 (Telstra)' 의 회장은 미국 AT&T에서 스카웃해온 프랭크 블라운트씨다.

91년 텔스트라 독점이던 전화사업에 '옵터스 (OPTUS)' 라는 제2통신회사의 설립을 허용한 뒤 텔스트라의 최고경영자로 92년 전격 영입했다.

공기업 사장에 외국인을, 그것도 경쟁사 출신을 발탁한 것. 경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기존 경영진으로는 개방시대에 살아남기 어렵다는 정부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블라운트회장은 취임 후 주인없는 공기업의 고질병인 '비만증' 부터 수술했다.

채산성이 맞지 않는 사업은 협력업체등에 떼줘 버렸다.

인력감축이 뒤따른 것은 필연적이었다.

취임초기 7만5천명에 달하던 직원은 이동통신사업등을 확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6만6천명으로 줄었다.

앞으로 2년간 1만4천명을 더 내보낼 계획이다.

물론 반발도 컸다.

5년사이 노조 파업만도 네차례나 겪었다.

그러나 민간기업식 경영효과가 작년부터 열매를 맺으면서 직원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경쟁에도 불구하고 매출액은 160억 호주달러 (약11조2천억원) 로 전년에 비해 4.7% 늘었으며, 세전 순이익은 17.4%나 증가했다.

이에 힘입어 호주정부는 올 7월 제2차 통신시장 개방을 단행했다.

영국 브리티시 텔레콤 (BT) 등 5개의 통신사업자 (Carrier)가 새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91년 OPTUS가 등장했을 때 과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한 직원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언제 시장이 완전개방돼도 자신있다." 텔스트라 국제협력사업부 존 애닝고문은 텔스트라의 자신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뉴질랜드의 '인사파괴' 는 한걸음 더 나간다.

공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부처 차관까지 국내외에 공개모집한다.

'사무차관' 제도가 그것. 인재 모집을 위해 외국 잡지나 신문등에 채용 광고까지 낸다.

작년 6월 상무부 사무차관 공채 광고는 호주와 뉴질랜드 신문은 물론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에도 실렸다.

사무차관은 형식상 정부부처 최고 책임자인 장관과 5년단위 고용계약을 한다.

사무차관은 정부에 '납품' 할 행정서비스의 목록과 목표치를 '납품 - 구매계약서' , '연간계획서' 등에 상세하게 적어 정부에 낸다.

대신 사무차관은 인사권, 예산편성.집행권, 정책입안권등 거의 전권을 위임받는다.

정부가 사무차관에게 행정업무를 용역 주는 꼴이다.

사무차관제 도입후 뉴질랜드의 국장급이상 공무원은 연봉제가 일반화됐다.

심지어 주한 뉴질랜드 대사는 물론 한국인 직원도 모두 계약직이다.

한국 처럼 자리가 없어 외부기관에 파견 형식으로 떠도는 '인공위성' 공무원은 한명도 없다.

이 때문에 뉴질랜드 공무원 사회에선 책임소재가 칼로 두부 자르듯 분명하다.

매년 실적평가로 연봉이 결정되니 업무효율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3년전 뉴질랜드 우편으로 스카웃된 영국인 패트릭 던햄은 뉴질랜드 정부개혁과 인사파괴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사제도를 뜯어 고치는게 정부개혁의 성공 열쇠다.

정부부처나 공기업을 탈바꿈시키기 위해선 기존 경영진의 절반은 외부에서 충당해야 된다는게 뉴질랜드 경험에서 나온 철칙이다."

시드니 (호주)·오클랜드 (뉴질랜드)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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