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서 달러 이용한 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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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해외 로비가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박 회장의 로비에는 특히 두 개의 거점이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식당 K회관과 태광실업의 베트남 공장인 태광비나실업㈜이 그곳이다. 이 식당의 K사장은 최근 입국해 검찰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 이광재·서갑원 의원이 그를 통해 수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박 회장은 K사장에게 미리 거액을 맡겨두거나 수시로 돈을 전달했다고 한다.

◆로비에 베트남 공장 활용 의혹=베트남의 태광실업 공장에는 베트남을 방문한 국내 귀빈들이 자주 초대됐다. 검찰은 박 회장의 초청으로 이 공장을 방문한 상당수의 정·관계 인사에게 금품이 건네진 것으로 보고 있다. 26일 구속된 이광재 의원도 베트남에서 수만 달러를 받은 혐의가 포함돼 있다.

베트남의 수도 호찌민에 위치한 태광비나실업은 태광실업 전체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주력 생산기지다.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이라는 박 회장의 위세를 과시할 만한 장소인 셈이다. 박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2004년 이 공장을 방문했다. 당시 여야 국회의원 4명이 김 의장을 수행했다. 이들 중 일부는 ‘박연차 리스트’에 등장하는 인사다. 금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전·현직 검찰 간부 일부도 베트남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해외에서 조성한 태광실업의 600억원대 비자금 일부가 로비에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태광실업 측은 지난해 검찰 수사에서 “해외 자금은 현지 로비 등에 사용됐고 국내에 유입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해외 로비에 썼다는 로비 자금 중 상당액은 외유 중인 국내 정치인에게 건네졌을 가능성이 크다.

◆1만 달러를 1만원으로 불러=박 회장은 돈을 세는 단위가 일반인과 달랐다. 5000만원은 ‘5000원’으로, 1만 달러는 ‘1만원’으로 부른다고 한다. 1억원은 ‘5000원 두 개’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태광실업 직원들도 이런 박 회장의 습관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모 인사에게 ‘1만원’을 가져다 주라고 지시하면 직원들이 알아서 1만 달러(1300여만원)를 갖다 줬다는 것이다. 홍 기획관은 “박 회장은 검찰 조사를 받을 때도 자신만의 계산 단위로 표현을 해서 진술을 받을 때 괄호를 만들어 실제 액수를 적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박정규 전 민정수석(구속)은 박 회장에게서 1억원어치 상품권을 받은 뒤 수차례 반환을 시도하는 등 고심을 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 관계자는 “박 전 수석은 1억원을 수표로 찾아 두 차례 박 회장 측에 연락을 했으나 돈을 반환하지 못했고, 2년 이상 지난 뒤에야 상품권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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