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가 남긴 숙제 <하> ‘3월의 감동’을 야구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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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지난 20일간 국민들은 야구 덕분에 꿈 같은 하루 하루를 보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야구 대표팀이 온갖 악재를 딛고 세계 강호들을 무너뜨릴 때마다 국민들은 감동하고 환호했다. 20대 여대생도, 40대 주부도, 60대 할아버지도 대표팀 선수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응원을 보낼 수 있게 됐다.

이제 뜨거운 야구 열기를 국내 프로구장으로 옮겨야 할 때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8개 구단, 선수가 모두 힘을 합해 한국 야구의 르네상스를 활짝 열어젖혀야 한다.

3년 전 제1회 WBC에서 한국이 4강 신화를 이뤘을 때도 야구인들은 대회 직후 개막한 프로야구에서 ‘WBC 특수’를 톡톡히 누릴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총관중수가 전년도인 2005년(338만7843명)보다 오히려 10%가량 줄어든 304만254명에 그치고 말았다.

그해 두산·SK·롯데·LG 등 3만 관중 구장을 지닌 팀들이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는 등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WBC 4강 신화의 주역들이 대부분 박찬호·이승엽 등 해외파였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또 구단과 선수들이 한층 높아진 팬들의 수준과 기대를 제대로 만족시켜 주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28명의 선수 중 해외파는 추신수(클리블랜드)와 임창용(야쿠르트) 등 단 두 명뿐이다. WBC 홈런·타점 2관왕에 오른 김태균(한화)과 올스타 3루수에 뽑힌 이범호(한화), ‘신일본 킬러’로 떠오른 봉중근(LG)·정현욱(삼성), 불굴의 투혼을 발휘한 이용규(KIA) 등 온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한 주인공들이 다음 달 4일 개막하는 프로야구에서 모두 팬들 앞에 다시 선다.

각 구단은 이들을 활용한 ‘스타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WBC 기간 중 한화가 김태균과 이범호의 별명 지어주기 이벤트를 벌인 것도 팬들의 관심을 끄는 좋은 사례다. 선수들도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WBC 준우승의 쾌거를 달성한 야구 강국의 자부심과 집중력을 잊지 말고 한층 정정당당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또한 승부에만 연연하지 않고 경기 시간 단축 등을 통해 팬을 우선시하는 경기를 펼쳐야 한다.

유영구 신임 KBO 총재는 지난달 취임사에서 “우수한 선수들이라는 훌륭한 콘텐트와 지난해 500만 관중을 돌파한 든든한 배경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볼거리를 선사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공언했다. 온 야구인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서는 것이 팬들을 야구장으로 끌어 모으고 앞으로 국제대회에서도 야구 강국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신화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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