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폭등 무역업계 주름살…결제용 달러마련 '쩔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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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환율급등으로 수출입의존도가 높은 국내기업들이 쩔쩔 매고있다.

수입업체들은 결제 대금용 달러구하기가 힘든데다 환율 폭등에 따른 수입가격 상승으로 마진폭도 크게 줄자 비상이 걸렸다.

수출을 늘리는 효과도 기대이하다.

바이어들의 단가인하요구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외환위기에 빠진 동남아의 구매력이 감소해 수출환경도 좋지 않기 때문. 또 원자재.자본재 수입가격이 올라 수출에서 얻은 이익을 갉아먹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결제통화를 엔이나 독일의 마르크로 전환하거나 대금지급 시기를 앞당기고 수출과 수입을 연계해 대금을 정산하는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 달러가 없어 쩔쩔 맨다 = 삼성그룹은 정부의 환율 안정을 위한 외화매각 권유에 따라 보유 달러를 거의 팔아치운 상태. 이때문에 달러잔고가 한때 1억달러도 안돼 최근 해외의 한 거래선으로부터 제의받은 1억달러짜리 계약을 미루기도 했다.

포철.현대.LG그룹등도 보유달러를 상당량 매각하는 바람에 결제대금 마련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공등 정유업계도 원유값 결제를 위한 달러 구하기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 고육지책 잇달아 등장 = 한솔제지.코오롱등 기업들은 수출로 번 달러를 환전하지 않고 수입대금으로 결제하는 방식을 추진중이다.

포철은 연간 각각 40억달러에 이르는 철광석.석탄등 원자재 수입대금과 비슷한 규모의 수출대금을 연계시킴으로써 환율변동 위험을 피한다는 전략이다.

대우전자를 비롯한 전자업계는 일본업체들과의 결제통화는 엔 (円) 으로, 독일업체들과는 마르크로 결제통화를 바꾸는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종합상사들은 연지급 (외상) 수입을 줄이거나 이미 계약한 것은 기일까지 기다리지 않고 조기지급하고 있다.

◇ 달러부채도 줄인다 = 40억달러가 넘는 해외부채를 안고 있는 대한항공은 이미 7~8대의 비행기를 팔거나 리스로 바꿔 해외 빚을 줄이고 있으며, 대한해운은 경제성이 떨어지는 배 2척을 팔아 부채를 줄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포철은 거래선과 협의해 달러표시부채를 비교적 안정적인 엔화표시부채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원그룹은 최근 단기부채 3천만달러를 미리 갚았다.

◇ 수입업체들 마진폭 줄어 울상 = 구찌 의류.잡화를 수입.판매하는 성주인터내셔널은 1년전 계약당시 달러당 8백60~8백70원으로 예상했으나 최근 9백60원대를 상회하자 마진폭이 크게 줄었다.

이 회사 한기영부장은 "수입단가가 올랐다고 해서 국내판매가를 올리기는 어려워 허리띠 졸라매기로 대응하고 있다" 면서 "일부 업체는 돈이 없어 통관을 못하고 있으며 머지 않아 문을 닫는 업체까지 나타날 것" 이라고 말했다.

◇ 수출플러스효과도 기대이하 = 우리의 주력수출시장인 동남아외환위기가 6월부터 계속되면서 현재 태국.말레이시아.싱가폴등에 대한 수출이 10~20% 줄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 지역 바이어들이 한시적인 거래중단및 단가인하를 요청하고 있다.

㈜대우 자카르타 이덕규 (李德揆) 지사장은 "동남아 역시 환율이 폭등해 현지 내수판매비중이 높은 한국산 자동차.가전제품의 판매가 크게 줄고 있다" 면서 "이때문에 현지 바이어들이 한국산 제품의 수출단가를 내려달라거나 일시적으로 거래를 중단하자는 요청이 많아 원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수출기대효과가 별로 없다" 고 말했다.

무역협회 조승제 (趙昇濟) 이사는 "우리의 산업구조가 차입금.원자재등의 해외비중이 높기 때문에 수출기대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면서 "환율안정을 통한 기업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게 급선무" 라고 지적했다.

신성식·이승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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