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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 모여 품앗이로 가르쳐 보니] 우리 엄마도 선생님…아이들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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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엄마 수업 듣고 수학 100점, 한문 100점 맞았어요.” 사교육 효과가 아니다. ‘엄마표 학원 수업’을 들은 자녀들의 학교 성적표다. 부천시 중동 덕유마을 4단지에 사는 최인희(36·수학)·최성윤(36·한문)·최지숙(38·피아노)씨가 각자의 집에 서로의 아이들만을 위한 수학·한문·피아노 학원을 시작한 지 이제 9개월. 초등학교 2학년인 세 자녀의 성과는 일취월장을 거듭했다. 최지숙씨는 “일반 학원에 보낼 때보다 훨씬 아이들의 집중도가 향상되고 태도도 좋아졌다”며 “엄마 선생님들이 매일같이 옆에서 돌보고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집에서 어떤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걸까. 최씨 엄마들의 ‘엄마표 학원’ 문을 두드렸다.

수학·한문·피아노 학원 공부…수업료는 0원

전기택(8·부천 부흥초2)군은 월요일이 되면 신난다. 수학과 피아노를 배우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전군의 수학 학원은 같은 아파트 17층에 사는 친구 김남우(8)군의 집.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부랴부랴 주판과 문제집을 챙겨 달려가면 ‘이모 선생님’으로 불리는 최인희씨가 반겨준다. 친구 송기욱(8)·남우군은 벌써 공부할 준비를 마쳤다.

수업은 항상 ‘10분 테스트’로 시작된다.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기본연산 시험을 본다. 최씨가 초시계를 들고 “준비…시작!”을 외치자 세 아이가 달려들어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최씨는 “경쟁심리를 자극하면 무섭게 집중한다”며 “상대방이 틀리고 자신이 맞은 문제는 직접 알려주도록 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 3회 수업시간에만 집중하게 하고, 숙제는 없다”며 “40분 수업시간 동안 두 번 정도 쉬는 시간을 갖고, 나머지는 타이트하게 진행한다”고 덧붙였다.

전군은 수학 공부가 끝나면 일대일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간다. 장소는 최지숙 이모 선생님이 기다리는 기욱이네 집이다. 피아노를 전공한 최씨는 10년 동안 학생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베테랑이다. 전군은 “내일은 우리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우리 엄마(최성윤씨)가 가르치는 한문 공부를 할 거예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오늘 전군이 받은 과외수업은 두 개, 수업료는 0원이다.

6년간 커리큘럼으로 체계적 수업지도

전군의 ‘엄마표 학원’은 일반 학원 못지않은 시스템을 자랑한다. 수학 주 3회(월·목·금, 남우네 집), 한문 주 2회(화·금, 기택이네 집), 피아노 주 2회(월·목, 기욱이네 집)로 구성된다. 아이들은 과목별로 해당 엄마(친구) 집을 방문해 학원처럼 서서 발표도 하고 시험도 본다. ‘이모 선생님’들은 교과과정을 꼼꼼히 살펴보고 초등 6년간 연간 계획까지 다 짜놨다. 일주일에 수시로 만나 서로의 진도를 점검하고 아이들의 상태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불가피하게 수업에 빠질 때는 주말에 보충수업도 한다.

‘엄마표 학원’이 시작된 건 지난해 여름. 초등 1학년 학부모 총회에서 처음 만난 세 엄마가 각자의 전공을 살려 자녀를 함께 교육시키자고 의견을 모은 게 시작이었다. 최지숙씨의 남편이 “다들 대학 나온 엄마들이 아까운 전공 안 살리고 뭐해”라고 던진 말이 계기가 됐다. 전공에 따라 최인희씨가 수학, 최지숙씨가 피아노, 최성윤씨가 한문을 맡아 역할을 나눴다.

이들은 “가정에서 이뤄지는 수업이기에 더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주의하자”고 뜻을 모았다. 최지숙씨는 “큰 목표를 먼저 세우고 세부 목표를 짜 내려갔다”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아이가 어떤 실력을 갖고 있으면 좋을지 생각해 목표를 짰다”고 말했다.

세 엄마는 아이들이 6학년 말쯤 되면 수학은 중1 선행학습을 하고, 한자는 1000자 정도를 암기해 4급 시험 자격증을 따며, 피아노는 체르니40 정도의 실력을 갖고 콩쿠르에 나가자는 목표를 세웠다. 학기별·월별·주간으로 세부 목표를 세우니 매일 해 나갈 공부의 방향이 저절로 잡혔다. 최인희씨는 “초등 저학년 때는 연산·암기력을 길러주기 위해 주산을 가르치고 있다”며 “4학년부터는 정규 교과과정과 선행학습을 병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엄마들의 교육관이 일치해야

엄마 수업을 하고 나서부터 아이들에게 변화가 생겼다. 최성윤씨는 “아이들이 엄마표 학원의 수강생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며 “한문 시험시간 직전에 세 명이 모여 ‘100점 맞자 파이팅!’을 외친 뒤 정말 셋 다 100점을 맞아 의기양양하게 귀가했다”고 웃음 지었다. 최인희씨는 “수업시간엔 아이들 셋 다 엄마를 ‘선생님’이라고 스스럼없이 부른다”며 “아이들이 엄마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볼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망설이는 엄마들에게 “일단 시작해 보라”고 조언했다. 처음엔 ‘어떻게 하나’ 싶어도 가르치면서 터득하는 노하우가 크다는 설명이다. 최성윤씨는 “처음엔 아이들이 산만해서 집중시키는 데 애를 먹었다”며 “아이들 셋을 번갈아가며 발표시키는 노하우를 터득해 이제는 아이들도 ‘우와 벌써 다 끝났네’라고 말할 정도로 한 시간이 후딱 간다”고 말했다.

엄마표 학원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엄마들끼리 교육관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성윤씨는 “우리를 보고 비슷한 방식으로 따라했던 이웃 엄마들이 3개월 만에 그만 둔 경우가 있었다”며 “저마다 교육 목표와 성향이 달라 충분한 고민과 협의 없이 무작정 시작하면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막상 아이들끼리 싸우거나 특정 아이가 손해 보는 등의 문제가 엄마들 싸움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지숙씨는 “자기 아이만 생각하다 보면 조금만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들어도 못 참게 되는 것”이라며 “수업시간 중 내 아이보다 다른 아이에게 더 신경 쓰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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