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록&론]역사가 없는 한국 대중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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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영화가 예술이냐 아니냐를 두고 유럽의 지식인들이 다툰 시기가 있었다지만 지금은 어느 누가 이 화두를 두고 고민이나 하겠는가.

대중음악 역시 20세기 중반까지 이것의 예술적 가치를 폄하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시장을 등에 업은 대중음악의 파급력은 그런 논지 자체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밀어붙여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대중음악은 자신의 땅에서조차 여전히 예술 혹은 한 시대를 반영하는 문화적 산물로 제대로 대접받는다고 말하기 어렵다.

식민지 시대나 50~60년대 신문을 훑어보노라면 이 땅의 대중음악이 얼마나 형편없는 대접을 받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20세기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에 관한 기사는 그럭저럭 눈에 띄고 서구 대중음악에 대한 소개 기사 역시 만만치 않건만 유독 국내 대중음악만 외면하는 풍토는 무슨 까닭일까. 정보와 비평의 이 절대적인 빈곤 양상은 어쩌면 당시의 언론 담당자들과 지식인 대중이 한국의 대중음악을 '문화' 나 '예술' 은 고사하고 언급할 만한 '오락' 으로도 간주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지표가 아닐까. 사정이 이러하니 한국 대중음악사의 1차 자료, 곧 음반과 악보는 말할 것도 없고 비평이나 기사 같은 2차 자료 또한 제대로 한번 정리되어 본 적이 없다.

지나간 노래들에 대한 일차적 정보는 고작 음악계 원로들의 불확실한 회고 이상의 차원을 넘기 힘든 형편이다.

우리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드는 사실은 일본의 음반회사가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했던 식민지 시대의 대중음악에 대해서는 그래도 황문평과 박찬호 같은 이들이 쓴 저서도 있고 또 음반도 오리지널 유성기 음반의 복각이 신나라나 LG미디어에 의해 간간이 시도되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욕구는 충족되지만 해방과 전쟁, 그리고 전후 복구로 혼란스러웠던 45년 이후부터 70년대 초반까지의 제반 자료는 거의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유실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늦기 전에, 어디선가 하나의 자료가 무관심 속에 더 사라지기 전에 우리의 현대사를 관통했던 대중음악의 유산들을 모으고 정리하는 작업이 서둘러 착수되어야 하지 않을까. 68년부터는 공륜 (公倫) 의 전신인 예륜 (藝倫) 이 심의 업무를 보기 시작했으므로 최소한 이 기구에는 60~90년대의 음반과 악보가 정리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으리라고는 결코 믿진 않지만) . 그 이전 시대는 개인 소장가나 방송사의 기증과 지원을 통해 채울 수밖에 없다.

뿌리가 보존되고 정리되지 않는 문화는 언젠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만다는 역사의 상식을 이제 심각하게 고려할 때가 되었다.

◇ 알림 = 다음달부터 '록&론' 과 '필름&필링' 의 필자가 바뀝니다.

지난 1년간 집필해 주신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와 영화평론가 정성일씨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새 필자로 성기완 (대중음악).김정룡 (영화) 씨가 수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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