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수퍼 추경, 집행 속도와 누수 방지가 관건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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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정부와 여당의 추가경정 예산안이 확정됐다. 재정지출을 17조7000억원 늘리고, 세입 결손분 11조2000억원을 메우기 위해 모두 28조9000억원을 증액하는 내용이다. 규모가 무려 30조원에 가까운 전대미문의 수퍼 추경예산안이다. 세입 결손 보전분을 제외한 재정지출 확대 규모가 1998년 외환위기 당시의 추경 예산에 비해 2배가 넘는다. 그야말로 재정 자금을 퍼부어서라도 경기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넘친다. 우리는 그동안 무분별한 추경 편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일단 추경을 통해 경기를 살린다는 방침이 섰다면 충분한 규모로 편성해 신속히 집행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이번 추경 편성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면 그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재정지출이 경기를 부양할 정도로 규모가 커야 하고, 단기간에 집중적인 지출로 조기에 성과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이번 수퍼 추경은 규모와 내용 면에서 여야 간에 이견이 있다. 그러나 추경 편성의 불가피성에 대해서는 여야가 한목소리다. 그만큼 경기 상황이 심각하고 위기의 파장이 크다는 데 여야가 공감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여야 간에 절충과 타협의 여지가 크다. 이번 정부·여당이 합의한 추경안은 내용 면에서 그동안 야당이 주장해온 일자리와 사회안전망 확충에 대한 배려가 두드러진다. 정부·여당의 추경안 이름도 ‘민생 안정을 위한 일자리 추경 예산’이다. 규모 면에서도 세입 결손분을 제외하면 야당안과 큰 차이가 없다. 이제 정부·여당이 추경안을 확정한 이상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에서 여야가 추경안을 세심하게 따져 보는 일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다.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추경안을 확정지어 예산이 집행되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래야 같은 돈을 갖고도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조기 집행에 실기하면 규모의 크고 작음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칫 집행 시기를 놓치면 경기는 못 살리고 인플레 압력만 키울 뿐이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예산 집행 속도에만 신경을 쓰다 엉뚱한 곳에 돈이 새는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정례 라디오 연설에서 “복지예산 집행에 실명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저소득 서민 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복지예산을 일선 공무원들이 빼먹는 일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어려운 사람에게 가야 할 돈을 횡령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국민은 앞으로 정부가 이 같은 예산 누수를 방치하는 것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복지예산뿐만 아니라 이번 추경 예산을 포함해 모든 국가 예산의 낭비를 철저히 막아야 한다. 예산이 불필요한 곳에 비효율적으로 쓰이는 것 또한 공무원의 횡령 못지않은 범죄이기 때문이다.

이번 추경안은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최후의 경기부양 카드다. 대규모 추경 편성에 따른 재정수지 악화와 국가 채무의 확대를 무릅쓰고 경기회복에 전력을 다하기로 한 것이다. 국회는 이번 추경을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 회생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 정부도 이번 추경 재원이 국민의 고혈을 담보로 마련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