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양심가게' 잇단 수난…청소년들 "잘해봐라" 협박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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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양심가게고 뭐고 다 반납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 지난 2일 청소년에게 담배 판매를 거부하다 봉변당하고 사법처리될뻔했던 서울중랑구묵2동 M슈퍼 주인 윤모 (40) 씨는 하루에도 수십통씩 걸려오는 협박전화에 마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밤낮없는 전화를 받으면 아무 말없이 끊기거나 사춘기를 갓 지난 앳된 목소리로 "다른 곳은 다 파는데 당신만 잘났느냐. 가만 안놔두겠다" 고 노골적으로 위협한다.

특히 지난 19일 MBC - TV 프로그램 '이경규가 간다' 가 윤씨의 가게를 '양심가게 8호점' 으로 지정,가게 모습을 방영한 뒤에는 밤 11시가 넘으면 불량기가 도는 10대 4, 5명이 날마다 가게앞을 어슬렁거리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윤씨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윤씨는 지난 2일 고교1년생등 10대 3명에게 담배판매를 거절하다 다퉈 경찰에 입건될뻔하다 현장을 목격한 주민들이 경찰에 항의, 무사했다.

윤씨는 "협박전화를 한 학생중에 큰 딸이 다니는 서울 T중 학생도 있는 것같다" 며 "귀가한 아이들에게 밖으로 못나가게 한다" 고 말했다.

윤씨는 "남들이 잘 지키지 않는 법을 혼자 지키려다 아이들까지 피해보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며 한숨을 내쉬었다.

청소년보호법 시행 두달째를 맞아 이처럼 법을 제대로 지키는 업주들이 곳곳에서 시련을 겪고 있으며 법의 허점을 악용, 당구장에서 담배등을 파는 사례가 늘고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 새로운 담배 구입처로 떠오르고 있는 당구장은 청소년 출입금지 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22일 오후7시 서울노원구상계동 E당구장. 10여개의 당구대중 3개를 차지하고 있던 고교생 10여명이 담배 연기를 자욱하게 내뿜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이들이 담배를 요구하자 주인 (45) 은 서슴없이 계산대 서랍에서 '디스' 두갑을 건넸다. 주인은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 손님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든 것 아니냐. 청소년보호법 시행이후 경찰이나 교육청에서 단속 나온 적이 한번도 없어 적발 염려도 하지 않는다" 고 말했다.

서울 서라벌중 진원석 교사는 "체육시설로 분류돼 학교에서 단속을 나갈 수 없는 당구장이 가장 큰 골칫거리다.

노래방이나 비디오방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학생들이 몰리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또 학생들 사이에는 담배를 파는 학교주변 가게의 명단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경찰청 한 관계자는 "당구장은 청소년보호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단속대상이 아닌데다 단속을 나가더라도 구멍가게와 달리 계속 지켜볼 수 없어 적발이 어렵다" 고 말했다.

나현철.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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