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새 1조3283억 순매수 … 외국인 바이코리아 나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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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증시에서 외국인에게 거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외국인이 이달 중순 이후 지속적으로 순매수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그래서 ‘바이 코리아’에 대한 기대까지 조심스레 등장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20일 유가증권시장에서 1075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로써 지난 10일 이후 모두 1조3283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올해 초만 해도 외국인들이 유가증권시장에서 주식을 순매수하는 한편으로 상장지수펀드(ETF)를 순매도하는 투자 기법을 통해 사실상 한국에 달러를 얼마 떨어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10일부터 20일 현재까지 외국인의 ETF 순매도 금액은 625억원에 불과했다. ETF 순매도를 감안해도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 1조2650억원을 투입했다. 현물(주식)만 사들인 게 아니다. 코스피지수선물시장에서도 외국인의 순매수가 이어졌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지수선물 1만8454계약을 순매수했다.

무엇보다 원화 가치 강세 전환이 외국인 순매수를 촉발했다. 원화 가치는 10일부터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해 20일까지 달러화에 대해 8.8% 올랐다. 올 들어 외국인은 원화 가치가 오를 때는 주식을 사들였다가, 내리면 팔았다. 달러를 원화로 바꿔서 국내 주식을 사는 외국인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원화 가치 하락은 환차손을 의미한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3000억 달러어치의 국채를 직접 사들이기로 한 것도 외국인 순매수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 정부가 이 돈을 경기부양에 투입하게 되면 달러 공급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달러 약세가 가속화될 것이란 분석이 이어졌다. 이선엽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FRB의 국채 매입 계획은 달러 약세를 유발하고 이로 인해 투자자들이 달러 표시 자산을 처분하고 해외로 발길을 돌릴 것”이라며 “이런 자금 중 일부가 한국 증시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조치로 원화 가치가 예전처럼 달러화에 대해 급락하는 사태는 재현되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지난해 하반기 이후 국내 주가가 급락하면서 자산가치에 비해 주가가 싸진 점도 외국인 매수를 유발한 것으로 분석됐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외국인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을 때는 순매수에 치중했고, 높을 때는 순매도 물량을 늘려왔다”며 “최근 PBR 수준은 외국인이 싸게 느낄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PBR이 높을수록 기업 자산가치에 비해 주가가 높은 것을 뜻한다. 실제 외국인은 PBR이 2에 육박했던 2007년 하반기 이후 국내 주식을 대거 내다 팔았다.

<그래프 참조>

그러나 지난해 주가가 급락하면서 국내 주식의 PBR은 뚝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초 유가증권시장 상장종목의 평균 PBR은 0.83을 기록했고, 올 들어 주가가 반등했지만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앤드루 애시턴 프랭클린템플턴투신운용 사장도 “국내 주식 가치는 기업 자산가치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걸림돌이 치워진 것은 결코 아니다. 전문가들이 아직 ‘바이 코리아’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데는 동유럽 부도 위험이 작용하고 있다.

주이환 KB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미국은 급한 불을 끈 것 같지만 유럽은 아직 멀었다”며 “서유럽의 기관투자가들은 한국을 동유럽과 같은 위험한 신흥시장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동유럽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면 국내 주식에 투자한 유럽계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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