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합종이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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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춘추시대의 중국에는 수많은 소규모의 제후국이 있다가 전국시대로 접어들며 그 규모가 커지고 숫자는 대폭 줄어든다.

철기 (鐵器) 의 보급으로 경제활동과 군사활동이 대형화함에 따라 도시국가에서 영토국가 단계로 나아간 것이다.

전국시대의 경쟁을 끝까지 견뎌낸 칠웅 (七雄) 중 진 (秦) 나라가 결국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BC 3세기 후반에 천하를 통일한다.

통일을이룬 시황제 (始皇帝) 보다 백년 앞의 혜왕 (惠王) 때부터 이미 진나라의 국력은 다른 어느 나라와도 일대일로 싸워서는 반드시 이겨낼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이 힘을 합치면 진나라를 물리칠 수 있었기 때문에 합종 (合縱) 과 연횡 (連衡) 으로 국제질서가 당분간 유지되고 있었다.

합종과 연횡의 대가인 소진 (蘇秦) 과 장의 (張儀) 는 동문 사형제일 뿐만 아니라 정치에 들어서는 길도 공교롭게 엇갈린다.

처음 소진이 진 혜왕에게 연횡책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다른 제후국으로 가서 합종책을 제창했다.

반대로 장의는 처음에 여러 제후국의 합종책을 제창하다가 실패한 뒤 진나라에 등용돼 연횡책을 펼쳤다.

중원 서쪽에 있던 진나라가 다른 나라와 동서간의 동맹을 맺는 것을 연횡이라 했고, 남북으로 늘어선 나라들이 연합해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을 합종이라 했다.

합종의 성립을 위해서는 여러 나라의 합의가 필요한 반면 진나라는 한 나라만 포섭하면 합종을 깨뜨릴 수 있었으니, 연횡책의 성공은 결국 시간문제였던 셈이다.

합종을무너뜨리는 데 앞장선 것은 제 (齊) 혼왕 (민王) 이었다.

진나라에서 가장 동쪽으로 떨어져 있던 제나라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진나라의 위협을 적게 받는 편이었고, 혼왕은 동제 (東帝) 와 서제 (西帝) 를 나눠 칭하며 천하를 함께 호령하자는 진나라의 감언이설에 넘어갔다.

이로써 제나라가 얻은 이익이라면 다른 나라들보다 몇년 늦게 망한 것 뿐이다.

세력간의 연합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려면 당사자들이 강하게 공감하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보수세력이 연합하려면 진보세력의 위협을 함께 느껴야 하고, 건전세력이 연합하려면 불건전세력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뚜렷한 명분 없이 세력확대만을 위해 연합을 얘기해서는 혼왕 같은 자들의 이탈을 막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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