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편의점 체인사업에 명예퇴직자 줄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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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6월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영업부장을 끝으로 직장생활을 청산한 朴모 (41.서울동작구사당동) 씨는 모 편의점 체인점을 신청했다가 깜짝 놀랐다.

자신보다 먼저 신청한 대기자 (待機者)가 무려 2백50여명. 순서대로라면 빨라야 1년이상 기다려야 가맹점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朴씨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신청자들의 경력. 대기업.은행간부 출신이 수두룩했고 전직 동시통역사나 교수등 전문직 종사자도 있었다.

쟁쟁한 경력을 가진 여성 신청자도 적지 않았다.

명예퇴직과 대기업 부도 여파로 실업자가 늘고 직장생활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편의점 가맹점이나 아동복 대리점등에 신청자가 몰려 치열한 경합이 벌어지고 있다.

업계 선두인 보광훼미리마트와 LG유통에는 올들어 9월말까지 각각 1천여명씩의 체인점 신청자가 몰렸다.

이중 서류심사와 현장테스트를 거쳐 4분의1 정도가 후보 자격을 얻어 순서를 기다리는 상태. 로손·미니스톱등에도 1백~2백명씩의 신청자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최근 편의점 체인점에 신청자가 몰리는 이유는 체인점 개설조건이 개선돼 3천만~5천만원 정도의 소자본이면 가능한데다 혼자 독립사업을 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위험부담이 적기 때문. 종전에는 신청자가 자기 돈으로 가게를 구하고 물건을 들여놔야 돼 적어도 1억~2억원은 손에 쥐어야 참가가 가능했고, 이 때문에 손해를 보는 체인점 주인이 많았다.

훼미리마트 개발추진과 이건준 (李建俊) 과장은 "최근 퇴직금을 들고 상담하는 신청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면서 "신설점 수를 매달 10개 이상으로 늘리고 있지만 신청자가 워낙 많아 최소한 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 고 말했다.

학력도 높아져 훼미리마트의 경우 신청자 80%가 대졸이며, 이중 20%는 석사 이상이다.

나이는 30대 초반~50대 후반으로 다양하지만 최근에는 30대가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체인점장 선정기준도 무척 까다로워졌다.

은행 출신 姜모 (36) 씨는 "퇴직금 5천만원을 들고 신청했는데 부부관계까지 체크해 보는등 여간 까다롭지 않더라" 고 말했다.

이 결과 편의점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편의점협회에 따르면 국내 10대 편의점 체인의 점포수는 지난해말 1천8백81개에서 8월말 현재 2천95개로 2백14개가 늘어났다.

업체별로는 LG와 훼미리마트가 각각 4백30개 안팎이고 다음은 로손 (2백79개).미니스톱 (1백93개)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LG유통 이희석 (李熙奭) 업무팀장은 "목좋은 곳은 월 5백만원 이상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2백50만원 내외" 라며 "너무 큰 기대를 갖는 것은 금물" 이라고 말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조건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가맹점 주인에게 불리한 부분이 많다" 면서 "편의점 가맹에 앞서 입지·가맹조건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고 말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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