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공식개막] 한국·미국 등 구체적 해법 첫 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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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3차 6자회담 개막날인 23일 남북한과 미국이 처음으로 북핵 해법과 관련한 구체적인 입장을 동시에 제시했다. 이에 따라 회담장 주변에서는 이번 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작지만 의미 있는 돌파구가 마련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회담이 진화하고 있다"=회담은 23일 오후 3시(현지시간) 중국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 17호각인 팡페이위안(芳菲苑)에서 개막됐다. 남북한과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참가국은 이날 ▶동결 대 상응조치(보상 또는 대응조치라는 표현도 혼용)의 구체적 내용과 방식▶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원칙과 용어 사용▶고농축 우라늄(HEU) 핵 개발 프로그램의 존재 여부 등 3대 쟁점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특히 한국은 북한이 핵 동결을 할 경우 북한에 중유를 지원하고 서면으로 잠정적인 안전보장을 약속하겠다는 등 구체적인 상응조치를 제안했다. 서면 안전보장의 경우 다자 간 형태로 북한에 대해 적대 의도나 공격 의도가 없다는 내용도 포함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항구적 안전보장은 핵 폐기가 완료되는 단계에서 할 수 있다고 했다.

핵 동결이 개시될 경우 미국은 북한을 테러 지원국에서 제외하고 제재조치를 완화하기 위한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할 수 있을 것이란 당근도 제시했다. 한국 측 수석대표인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미국의 제안도 우리 제안을 기초로 만든 것이며, 그간 한.미 공조 차원에서 매우 긴밀히 협의해 왔다"고 말했다. 또 "큰 틀이나 방향에서 한.미 간에 이견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북한도 이날 핵 동결 대상, 검증 방식, 기간 및 개시 시점 등 동결의 4대 요소에 대해 매우 상세한 방안을 제시했다고 복수의 현지 소식통이 전했다.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도 인사말에서 "미국 대표단에서 뭔가 새로운 말을 듣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정책의 포기를 행동으로 보여줄 경우 핵무기 계획을 투명한 방법으로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미국이 CVID 요구를 철회하는 것을 전제로 핵 동결에 관한 구체적인 안을 내놓을 준비가 돼 있다"고도 했다.

이에 제임스 켈리 미국 수석대표는 "우리도 뭔가 제안할 내용을 가져왔다"고 화답했다. 켈리 대표는 인사말에서 CVID라는 용어를 한 번도 쓰지 않고 대신 '포괄적인 비핵화(Comprehensive Denuclearization)'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CVID 용어 문제에서도 타협이 이뤄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 차관보는 "회담이 진화(evolving)하고 있다"며 "북한은 그간 동결의 조건에 대해 다른 나라들이 먼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했는데, 오늘은 북한이 가장 먼저 얘기한 게 그 단적인 예"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낙관은 금물=하지만 성급한 낙관은 금물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단 각자의 구체적인 협상안을 내놨을 뿐이며, 합의하는 것은 별개라는 지적이다.

우리 측 회담 관계자도 "미국의 제안이 조금 복잡해 본회담이 끝나기 전에 북측이 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미국 측 관계자는 "이날 본회담이 끝난 뒤 북.미 양자 접촉을 공식 제안했으나 북측이 평양의 훈령을 받아야 한다며 일단 거절했다"며 회담 기류가 변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베이징=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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