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의 FUNFUN LIFE] 첫사랑 오빠만큼 소중한 내 친구 재봉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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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는 연예계에서도 소문난 재주꾼이다. 뭐든 뚝딱뚝딱 잘 만들고, 만들어 선물하는 걸 좋아한단다. 그는 ‘가장 웃기기 쉬운 사람’으로도 통한다. 언제나 웃을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또 그 호탕한 웃음만으로도 보는 사람을 웃게 만드는 사람이다. 즐거운 에너지가 넘치는 그가 세상을 재밌게 사는 비결을 공개하는 ‘취미칼럼’을 격주로 연재한다.

열네 살 때의 어느 날, 아버지는 나에게 장난감을 하나 갖다 주셨다. 재봉틀이었다. 일부러 장난감으로 챙겨주신 건 아니고, 동네 원단공장에서 버린 물건 중 쓸 만한 것을 주워 오신 것이다.

아버지는 작은 기계 공장을 하셨고, 그래서 나는 공장이 많은 동네에 살았다. 덕분에 우리 동네에선 원단부터 실까지 뭐든 구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나의 재봉놀이는 시작됐다. ‘재봉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내 친구가 생긴 것이다.

뭐든지 뚝딱 잘 만드는 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받아서인지, 나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재봉틀을 제법 잘 다뤘다. 솔직히 뭐 다른 방법이 있나. TV에서 본 것처럼 그냥 페달을 밟았을 뿐인데 옷이 꿰매지는 것이었다. 참 신기했다.

주위에 널린 게 원단과 실이니 나는 뭐든 만들 수 있었다. 뚫린 부분은 무조건 박아서 막아버렸고, 멀쩡한 옷을 뜯어 다시 내가 완성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좀 무식한 짓이지만, 옷이 만들어지기 전의 상태가 궁금해 멀쩡한 옷을 뜯어본 다음 다시 꿰매는 일도 스스럼없이 했다. 예쁜 옷을 여러 벌 갖고 싶어 옷을 뜯어서 원단에 밑그림을 그리고 색깔·원단별로 옷을 만들어 대기도 했다. 마치 디자이너가 된 듯한 이 짜릿함…. 나 혼자의 힘으로 파리 유학을 다녀온 기분이랄까. 풉^^

아무튼 밥먹고 재봉질만 해대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결국 4년여 만에 재봉이는 병이 들었다. 우리 집에서 그 비싼 재봉틀을 다시 사줄 리는 만무했다. 그나마 십대 때의 내 인생에서 내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였는데 말이다. 아까워 버리지도 못했던 망가진 재봉이를 보며, 내 솜씨도 녹슬어 간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다(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이긴 했지만).

그러던 차에 혼자 짝사랑했던 첫사랑 오빠를 우연히 만나게 됐다. 몇 년 만에 만난 그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공부 중이라고 했다. 그 무렵 국가의 부름을 받고 군대에 가게 됐다며 내게 재봉틀을 주고 떠났다.

‘떠나버린 첫사랑 ㅠㅠ, 다시 찾게 된 첫 친구 재봉이^^’ .

첫사랑이 떠난 슬픔보다 재봉이를 만난 것이 더 감격스러웠으니 재봉틀에 대한 갈망이 사랑만큼이나 컸던 듯하다. 어찌됐건 나의 재봉놀이는 2년 만에 다시 시작됐다. 원래 시중 물건 중엔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원단이 별로고, 색깔이 마음에 들면 가격이나 스타일이 영~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재봉이는 이런 고민과 불만을 싹 거둬 갔다. 내 맘대로 되는 쿠션·소파커버·식탁보·옷…. 정말 재봉틀 하나 다룰줄 아는 것뿐인데, 인생이 내 맘대로 되는 것 같은 이 쾌감.

배워본 적이 없어 전문가처럼 잘 하지는 못한다. 무작정 재봉틀과 둘이 씨름해 얻은 기술로 그래도 지금은 제법 원하는 것은 다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재봉틀을 두 대나 망가뜨렸지만….

재봉틀을 다룰줄 알면, 느낄 수 있는 재미는 참 많다. 내가 생각한 대로 만들어지는 걸 보면서 얻게 되는 뿌듯함과 성취감. 친구에게 내가 직접 만든 선물을 건넬 때의 흐뭇함. 그걸 받는 상대방의 얼굴에 번지는 기쁨까지. 인생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그리고 좀 더 꿈꾸어 본다. 삶의 상처로 해진 사람들의 마음도 재봉틀로 박아서 잘 기워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애완동물 옷, 이렇게 만들어요

재봉틀과 친해지려면 일단 재봉틀로 뭔가를 만들어 봐야 한다. 초보자에게 ‘강추’하는 것은 애완동물의 옷이다. 페달 밟을 힘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내 맘대로 만드는 애완견과 고양이 옷’ 비법을 소개한다. 열심히 연습한 분을 위해 다음 기회에 좀 더 난이도 높은 물건 만드는 법도 차례로 소개할 생각이니 이 기회에 재봉틀과 한번 친해보면 어떠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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