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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관광여행의 효시 18세기 유럽 ‘그랜드 투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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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그러나 1700년 이후 계몽사상의 보급으로 종교적 갈등이 사그라지자 귀족과 상인들 사이에 마치 유행병처럼 외국 여행 붐이 일어났다. 주로 유럽 ‘변두리 국가’이던 영국·독일·러시아·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 자제들을 외국으로 보냈다. 그들은 해외 식민지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큰 부자가 됐지만 ‘문화적 열등감’을 떨칠 수 없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이어받은 유산에 대한 자긍심이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는 한때 로마제국의 중심부였고, 15세기 이래 찬란한 르네상스 문화를 일궈낸 ‘선진국’이었다. 그 결과 1720년께부터 행세깨나 하는 영국인이나 독일인 중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2, 3년 체류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시골뜨기 취급을 받았다. 스칸디나비아와 러시아의 귀족들도 재빨리 그런 유행을 뒤따랐다.

영국과 독일의 젊은 귀족들은 예법을 익히고 전쟁과 외교를 배우기 위해 반드시 ‘그랜드 투어’를 해야만 했다. 경제력 덕분에 유럽인들은 유럽 역사상 가장 값비싼 교육비를 부담할 수 있었다. 젊은 귀족들은 보통 3년 이상 외국에 체류했다. 대개 그들은 수행원으로 두 명의 가정교사를 두었다. 한 명은 공부를 가르쳤고, 또 한 명은 승마·펜싱·전술을 가르쳤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도 한때 부잣집 ‘도련님’을 수행했을 정도로 가정교사 중에는 저명한 학자가 많았다. 옆의 그림은 한 영국인 ‘도련님’(가운데 키 작은 청년)이 가정교사와 하인들을 거느리고 프랑스 여관에 도착하는 모습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배운 심미안과 교양 덕분에 야만 상태 비슷한 수준에 살던 변두리 국가들은 도회적 세련미를 얻게 됐다. 그랜드 투어는 유럽 귀족계급에 동질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랜드 투어를 경험한 젊은이라면 취향·지식·교양·교육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전 유럽의 지적 평준화가 이뤄진 셈이다.

박상익(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서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