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자전거가 왕이로소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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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바야흐로 자전거 시대다. 하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다.

공원의 자전거 주차장


멋진 자전거 한대 구입해 폼나게 달려보고 싶지만, 자전거 전용도로를 찾기 힘들다. 도로교통법 등 법규도 어렵다. 차도가 위험해 보여 보도를 이용했더니 보행자의 불만이 쏟아진다. 자전거 주차공간이 없으니 어딜 가나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고민 없이 편안하게 자전거를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을 자전거 선진국 네덜란드에서 찾아보자.

네덜란드 그로닝겐은 자전거 매니어들이 꿈꾸는 도시다. 그로닝겐은 암스테르담과 브레멘으로부터 200km 가량 떨어진 네덜란드 북동부 도시다. 인구는 외곽까지 합하면 43만명 정도. 지리적으로 네덜란드 북부의 중심지다. 그러나 다른 중심지와 달리 교통이 원활하고 소음이 적다. 이곳 시민들은 자전거 이용률을 극대화 시켜 교통문제를 해결했다. 자전거 이용자들은 학교나 직장, 마트, 지하철 등 어디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첫번째 비결은 편리성이다. 그로닝겐 곳곳에 자전거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그로닝겐 지하철에는 자전거 이용자들을 위한 지정석이 칸 마다 마련돼 있다. 한국 지하철의 노약자석과 비슷한 원리다. 자전거 전용석은 승객이 자전거를 안전하게 세워놓을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넉넉하다. 시민들은 지하철이 붐비더라도 이 좌석을 함부로 넘보지 않는다. 어쩌다 잠시 앉았다가도 지하철 내부로 자전거가 들어오면 재빠르게 자리를 내어준다. 자전거 이용자를 배려하는 마인드가 사회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

그로닝겐역 앞 광장 자전거 주차장


그로닝겐의 두번째 성공비결은 자전거 주차장의 운영철학에 있다. 곳곳에 크고 작은 자전거 주차장을 만들어 자전거가 애물단지로 돌변하는 상황은 거의 없다. 그로닝겐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기차역이나 지하철역의 자전거 주차장을 보며 다들 깜짝 놀란다. 마치 대규모 퍼포먼스를 보는 듯 하다. 역에서 나오는 시민들 대부분이 자전거를 이용하기 때문에 수천대는 기본이다. 규모에 놀랐던 사람들은 곧이어 의구심을 가진다. 이 많은 자전거를 누가 다 관리할까. 또 자기 자전거를 찾는데 애를 먹지는 않을까. 도난의 위험은 없을까. 궁금증은 끝이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관리하는 사람은 따로 없다. 대신 자전거는 대부분 당국에 등록돼 있다. 도난을 당하더라도 차량 도난처럼 무게 있게 다뤄진다. 하지만 도난 사례가 거의 없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는데다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공용자전거가 곳곳에 비치돼 있어 굳이 남의 것을 넘볼 이유가 없다.
또 아무리 드넓은 광장이라도 자신이 자전거를 세워둔 위치는 곧잘 찾는다. 대부분 지정석이 있기 때문이다. 지정석이라고 해서 특정 공간에 대해서 법적 사용권을 갖는 것은 아니다. 자주 사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질서가 생긴 것이다. 사용자들의 의식이 이만큼 높아지기까지 당국도 많은 노력을 했다. 먼저 자전거 등록제를 철저하게 실시했다. 또 광장에 자전거 주차장이 제대로 자리잡기까지 꼼꼼하게 관리를 했다.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히면 다른 장소의 주차장을 또 물색한다. 이렇게 해서 주어진 인력으로 효율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하철 내 자전거 전용석


자전거 천국의 세번째 비결은 도로구조에 있다. 한국이나 일본의 경우에는 자전거보다 차량이 우선이다. 그러나 그로닝겐에서는 사람이 가장 우선이다 보니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우선이다. 그로닝겐의 도로 분배 우선 순위는 보행자가 첫번째다. 이어 자전거와 자동차 순서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에는 자동차와 보행자가 우선이고 자전거는 맨 마지막이다. 이러한 제도의 차이는 도로 위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그로닝겐의 도로에는 높은 과속방지턱이 많다. 교차로의 경우에는 방지턱의 높이가 인도의 높이와 같다. 그러니 모든 차량들은 보행자과 함께 사용하는 도로에 진입하면 속도를 확 줄여야 한다. 차량 속도를 떨어뜨리면 보행자와 자전거의 안전이 보장된다. 이런 식으로 도로구조를 ‘인간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그로닝겐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좁은 길에서는 어떻게 할까. 역시 차량을 희생시킨다. 좁은 도로의 차선을 일방통행으로 바꾸어 인도와 자전거도로를 먼저 확보한다. 이보다 더 좁은 길에서는 따로 차선 구분을 두지 않고 무조건 자전거 우선 원칙을 적용한다.
그로닝겐, 그곳은 사람과 자전거가 왕이다.

사진출처/ www.oldengarm.com
글/ 장치선 워크홀릭 담당기자 charity1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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