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타임스지 섹션별 편집·경영 통합운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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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서부지역 최대 신문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신문업계 초유의 대개혁에 착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컬러인쇄.섹션 다양화 등으로 화제가 됐던 뉴욕 타임스의 개혁이 무색할 정도로 강도 높은 조치다.

신문업계의 오랜 금과옥조였던 '편집과 경영의 분리' 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LA 타임스의 개혁은 최근 이뤄진 최고 경영진 교체와 경영 부진을 계기로 단행됐다.

이 신문의 모기업인 타임 미러사 회장 마크 윌리스 (56)가 지난달 LA 타임스 발행인으로 겸임 발령을 받자 미 신문업계로서는 전대미문의 개혁에 불을 댕긴 것이다.

윌리스 신임 발행인은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장.대용식 회사 제너럴 밀스의 최고 경영자를 지내 언론인이라기보다 전문경영인에 훨씬 가까운 인물. 그는 정교한 경영기법을 익힌 뒤 지난 80년 타임 미러사의 재무담당 책임자로 취임, LA 타임스와 연을 맺게 됐다.

때문에 그의 작품인 이번 조치도 '소비자의 입맛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 더 많은 독자를 확보' 하자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개혁의 배경에는 LA 타임스도 미국의 다른 대형신문들과 마찬가지로 91년 1백36만부였던 발행부수가 지금은 1백7만부로 떨어진 점도 작용하고 있다.

한편 지난주 발표된 이번 개혁의 핵심은 LA 타임스 조직개편. 섹션단위로 제작부문 (편집국) 과 경영부문 (관리.판매.광고국) 을 통합.운영한다는게 골자로 우선은 경제.스포츠.여성 (신설 예정) 섹션부터 시행한 뒤 점차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 청사진에 따르면 각 섹션은 마치 일반기업체의 독립적인 사업부 형태로 운영하게 된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섹션별로 독립채산제가 도입돼 기자들도 순익 개념에 무관심할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해당섹션의 기자나 데스크들은 광고.판매 담당자들과 제작 내용을 상의해야 한다.

광고나 판매 쪽에서도 돌아가는 상황을 편집진에 알려야 함은 물론이다.

이번 개혁은 조직개편 뿐만 아니라 인사부문에서도 이뤄졌다.

LA 타임스는 9년간 편집인을 맡아온 셸비 코피 3세를 퇴진시키고 후임에 국제통인 마이클 파크스를 편집국장에 임명했다.

이와 함께 소비자 마케팅담당 수석부사장 제프리 클라인을 신설직인 뉴스담당 총책임자로, 광고담당 부사장 재니스 헤피를 여성섹션 책임자로 발령했다.

'편집.경영 통합' 의 첫 수순인 셈이다.

LA 타임스는 이밖에도 지역인구의 40%를 차지하는 히스패닉 독자를 겨냥한 라티노 섹션을 만들고, 북캘리포니아를 공략하기 위해 새크라멘토 (캘리포니아 주도) 판을 준비중이다.

물론 반대가 없을 수 없어 이번 개혁안에 대해 LA 타임스 기자들은 '편집권 독립에 대한 중대한 침해' 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 아래선 광고주가 싫어하는 기사, 영향력 있는 인물.단체를 비판하는 기사는 엄두도 못낸다는 것이다.

1백여명의 기자들은 최근 라티노 섹션 발행과 관련, 이에 결사반대한다는 내용의 연판장을 돌려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개혁은 신문업계 전반에 불어닥친 경영 부진을 탈피하기 위한 과감한 '승부수' 로 비쳐지고 있어 미 언론계 전체가 이 새로운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뉴욕 = 김동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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