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AIG 때리기’ 나섰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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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비용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 지난해 미국 언론들이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을 비판하면서 쓴 표현이다. 공적자금을 투입할 경우 비용은 사회가 나눠 부담하고, 이익은 개인적으로 챙겨가게 된다는 뜻이다.

미국 최대 보험사인 AIG의 보너스 지급은 바로 이에 해당한다. 그래서 미국에선 연일 공분(公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로이터는 16일 미국 정부가 AIG에 대한 3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공적자금 지원 계획을 재검토한다고 전했다. 보너스 지급을 막으려는 압박용이다. 하지만 엄포로 그칠 공산이 크다. 보너스 지급을 막기 위해 AIG를 도산시키자는 말이나 같기 때문이다.

보너스는 정부가 법적으로 건드릴 수 없는 문제다. 변호사 출신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그가 버럭 화를 낸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일로 그가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책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가 계속 나빠지면 유권자들은 ‘오바마도 월가 편을 든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그는 망설이지 않고 AIG 때리기에 나섰다. 포퓰리스트적인 행동이지만, 그로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AIG는 항변한다. 준다고 한 보너스를 안 주면 유능한 인력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이 정도로는 설득력이 약하다. 그렇게 유능한 직원이 많았다면 왜 부실화됐느냐는 물음에는 답이 안 된다. 여기에는 단기 평가에 의한 보상 시스템의 문제점이 잘 드러난다. 미국식 경영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눈에 금방 띄는 성과만 놓고 돈으로 보상해줄 경우 뒤늦게 밝혀진 잘못엔 책임 추궁이 어렵다.

물론 AIG도 답답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미국인들의 분노에는 오해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AIG가 공적자금을 국내외 다른 금융회사로 유출시켰다는 비판이 그렇다. AIG는 지급보증·대출 등으로 빚을 지고 있다. 이를 갚지 못해 공적자금을 받았다. 그 빚을 공적자금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AIG는 파산한다. AIG로선 공적자금을 용도에 따라 사용했는데도 ‘유출’이라고 비난받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이런 논란이 벌어지는 통에 본질적인 쟁점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진다는 점이다. 금융회사가 고객 돈으로 도박과 같은 투자를 하지 않도록 체계적이고 정교한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감시·감독의 수준을 높이는 일이야말로 중요한 과제다.

한국은 어떤가. 감독 당국의 규제가 워낙 광범하고 집요하기 때문에 공적자금으로 태연히 보너스를 지급하는 일은 일어나기 어렵다. 국내 은행들은 공적자금을 받지도 않은 상태에서 알아서 임금을 반납하거나 깎고 있다. 외제 경품을 내건 판촉행사도 당국이 못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규제가 능사는 아니다. 한국과 미국, 어느 시스템이 좋은지는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놓고 평가해야 할 문제다.  

남윤호 금융증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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