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의 향기

천원 김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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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김밥이 변했다. 너무 달라졌다. 아침을 거르고 나오는 출근길에 지하철역 앞에는 천원 한 장과 바꿀 김밥이 있다. 우적우적 호일 안의 김밥을 전철 안에서 씹어 먹으며 전쟁 같은 하루를 준비한다. 맛보다는 간편성이다. 또 한밤중 한잔하고 들어가는 길의 24시간 김밥집은 술자리에서 채워지지 않은 정서적 허기를 메워 준다. 이렇게 김밥은 싸고 이동성이 있으며, 24시간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로 자리매김했다. 나의 완전소중 김밥은 “또 김밥이야” “김밥으로 때웠어”와 같은 상황에 어울리는 처지가 됐다.

곰곰 생각해 보니 캔음료가 나온 후의 식혜와 수정과도 처지가 비슷하다. 먹거리뿐만이 아니다. 사회운동과 진보의 상징이던 개량 한복은 한식점 종업원의 유니폼으로 먼저 떠오른다. 문화란 유기체와 같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건 너무 빠르지 않은가? 이미지는 변하기 나름이지만 너무 빨리 또 너무 많이 변했다. 또 변화의 방향 속에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의 변화가 읽힌다. 예전 김밥이나 식혜를 맛보기 위해 우리는 적당한 때를 기다려야 했다. 불편하지만 당연했다. 이제는 기다릴 필요가 없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아주 싼값에 당장 소비할 수 있게 됐다. 편해진 만큼 퇴행이 조장된다.

인간의 성숙은 만족을 참고 기다릴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것과 직렬 연결돼 있다. 아이가 혼나면서 자라는 과정에 애써 배우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편리한 삶은 기다릴 필요가 없게 해주는 대신 조급증과 충동성을 키운다. 따져 보면 도시적 삶의 곳곳이 이런 퇴행 조장의 지뢰밭이다. 24시간 편의점, 배달전문 식당, 케이블TV는 시간이 정해준 농경사회적이고 생리적인 제한의 족쇄를 무장해제시키고 “원하라, 바로 구하리라”는 인스턴트 원스톱 생활을 촉진하고 있다. 이제 제철 과일, 절기에 맞는 풍습과 같은 문화는 일상에서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편리함은 쾌적함과 즉각적 만족을 선사하나, 유아적 퇴행을 일으켜 참을성 제로를 지향하게 한다. 점차 작은 다툼도 참지 못하고 “네 탓이요”의 상호 비방을 일상화한다. “여긴 왜 이리 불편해”라며 낯선 환경에 나를 적응하려 노력하기보다 불만만 늘어놓는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쌓아 올리는 과정은 길고 어렵지만 무너지거나 뒤로 후퇴하는 것은 걷잡을 수 없이 순식간이니 말이다. 이미 늦은 것일까?

이제는 가끔 김밥을 먹을 때마다 여우가 원숭이에게 줬던 꽃신이 떠오른다. 말랑말랑해져버린 발바닥으로는 땅에 서 있을 수 없어 노예가 돼 버린 원숭이 신세. 천원 한 장의 편리함에 잃어가는 기다림과 여유라는 인생의 굳은살.

하지현 정신과 전문의

◆약력=서울대 의학과 졸업, 서울대 의학박사, 건국대 신경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