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 선고공판 판결문 요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조세포탈부분〉

1.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에 관하여

조세범처벌법의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는 조세부과.징수를 불능 또는 곤란케 하는 행위로, 피고인이 차명계좌를 개설한 동기나 그 명의인들의 관계, 헌 수표를 더욱 자금추적이 어려운 백화점매장 헌 수표로 다시 교환하여 사용한 점등에 비춰보면 피고인이 소득을 은폐해 조세의 부과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곤란케 하는 적극적 행위라고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금융실명거래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 시행으로 가명계좌를 통한 금융거래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게 되고 차명계좌를 통한 거래도 일반적 방식으로 용인되지 않는 금융거래관행이 정립됐음에도 피고인이 10여개의 차명계좌를 운용한 행위는 사회통념상 도의및 경제윤리에 반하는 행위로 평가하기에 족하다.

2.조세포탈의 고의에 관하여

조세포탈범은 고의범이기는 하나 목적범은 아니므로 피고인이 기업인들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알려지는 것을 감추기 위한 것일뿐 조세포탈이 1차적 목적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차명계좌를 이용하고 자금추적이 어려운 헌 수표로 받은 행위는 스스로의 의사에 기인하였던 것으로 인정된다.

위와 같이 자금은닉의 부정행위를 행한 것으로 인정되는 이상 조세포탈에 대한 피고인의 고의를 부정할 수는 없다.

3.정치자금 제공행위는 과세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에 관하여.

피고인이 정치자금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돈을 취득하였고 실제 정치활동에 소비하였다고 하여도 '증여' 또는 '이자' 의 법률형식으로 수수한 이상 그 '증여' 또는 '이자' 에 대하여 과세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정치자금에 관한 법률과 조세감면규제법도 정치자금이 원칙적으로 과세 대상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치활동을 위하여 기업인들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은 행위에 대하여 지금까지 현실적으로 과세한 적이 없다거나 정치자금의 은닉행위를 조세포탈범으로 처벌한 예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위와 같은 해석이 불합리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정치자금에 과세하는 것이 상부상조의 전통적 미덕을 법률로 금지.처벌하는 결과를 낳거나 국민 법감정에 배치된다고 볼 근거도 없다.

〈무죄 부분〉

1.김덕영으로부터 1억5천만원을 받았다는 알선수재 김덕영이 93년3월~6월경 피고인에게 '신한투자금융㈜ 주식반환 청구소송' 건에 대해 몇차례 언급했고 같은해 3월경 공소외 신영환등과 함께 피고인에게 활동비를 지원하기로 하고 매월 금원을 제공한 점은 인정된다.

그러나 이것이 선배 전세봉의 권유로 후배인 피고인을 돕는다는 의도에서 비롯됐고 소송건에 대한 구체적인 청탁을 한 적은 없으며 위 사건은 재판중이어서 김현철씨가 간섭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고 실제로 피고인이 소송에 영향력을 행사한 증거가 없다.

김덕영이 소송이나 기업운영에 직.간접적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금품을 제공했다 하더라도 추상적인 기대의 대가로 제공되는 금품까지 알선수재로 인정할 수 없다.

2.피고인이 신영환으로부터 세차례 받은 1억8천만원

피고인이 위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되나 조세포탈범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과세표준 신고를 하지 않은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조세의 부과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위계 기타 부정한 적극적 행위' 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위 돈은 유죄로 인정된 돈과는 달리 공소사실에 적시된 차명계좌 또는 명의대여자가 밝혀진 다른 차명계좌에도 입금되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어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가 있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

〈양형 이유〉

피고인은 현직 대통령의 아들로서 타인으로부터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해 거액의 금품을 수수함은 물론 금융실명제 취지에 반하는 차명계좌를 운용하거나 세탁된 헌 수표를 교부받는등 부정한 방법으로 증여사실 또는 소득을 은닉해 거액의 세금을 포탈한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나,가까이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금융상 편의나 금품을 교부받은 점, 처음부터 조세포탈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자금출처를 은닉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조세포탈에 이르게 된 점및 이 사건에 이르기까지 정치인들이 교부받는 정치자금을 비롯해 이 사건과 유사한 돈에 대해 현실적으로 과세가 이루어지거나 조세포탈죄로 처벌되지 않은 점등의 정상을 참작하여 작량감경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