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시대 북한 어디로 가나]김정일 누구인가(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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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김정일 (金正日) 은 64년 당지도원으로 정치수업을 시작한지 33년만에, 그리고 74년 김일성 (金日成) 의 후계자로 비밀지명된지 23년만에 통치자 자리에 공식취임했다.

1942년 2월16일 김일성과 김정숙 (金正淑) 의 맏아들로 러시아 하바로프스크 근처 브야츠크에서 태어난 金은 남산인민학교.남산고급중학교를 졸업한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했다.

64년 3월 이 대학을 졸업한 金은 곧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배속되면서 정치활동을 본격화했다.

그는 김일성과 빨치산측근들의 배려아래 어릴 때부터 '제왕학 (帝王學)' 을 배우는 행운을 누렸다.

북측의 주장에 따르면 64년 한해에만 김일성의 장기출장 15회를 포함해 현지지도에 31회나 동행하며 후계자 수업을 쌓은 것으로 돼있다.

개인적으로 예술분야, 특히 영화.음악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그는 이를 통한 선전사업에 재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70년대 초반 '피바다' 등 북한의 대표적인 영화.가극의 제작을 지도했으며 가극대본을 직접 쓰기도 했다고 한다.

최은희.신상옥씨는 수기에서 "북한영화의 최고권위자는 김정일이다.

그는 어느 현역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보다도 앞선 재능과 실력을 갖고 있다" 고 밝힌 바 있다.

그가 권력의 핵에 해당하는 당 조직.선전담당 비서를 맡은 것은 73년 9월이고 5개월뒤 74년 2월엔 당정치위원이 되면서 후계자로 지명됐다.

김정일은 정치위원 취임직후부터 '온사회의 김일성주의화' 를 부르짖으며 이데올로기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평양을 비롯한 전국각지의 김일성 우상화물 (物) 들의 거의 대부분에 金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한 후에도 김정일은 '유훈통치' 라는 절묘한 슬로건을 내걸고 김일성 우상화에 진력해 왔다.

정창현 기자

[김정일 약력]

▶42.2.16 출생

▶54.8 평양 제4인민학교 졸업

▶57.8 평양 제1초급중학교 졸업

▶60.8 남산고급중학교 졸업

▶64.3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

▶64.4 이후 당중앙위원회 지도원.과장.부부장.부장

▶73.9 당중앙위 조직.선전담당 비서

▶74.2 당중앙위 정치위원 ( '후계자' 결정)

▶80.10 당정치국 상무위원.당비서.당중앙군사위원

▶82.2 이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90.5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91.12 인민군 최고사령관

▶92.4 '공화국 원수' 칭호

▶93.4 국방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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