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산맥 위에 다시 6000㎞의 성을 쌓은 까닭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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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호 10면

“일어서라!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여!”
거창한 구호처럼 들리는 중국의 국가(國歌) ‘의용군 행진곡’의 시작 부분이다. 그 다음 부분은 이렇다.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의 새 (만리)장성을 쌓자!”
중국이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갈팡질팡하는 상황, 1949년 새 사회주의 중국이 건국되기 전의 일본 침략과 국민당·공산당 사이의 내전…. 이러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노래다. 그처럼 위급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중국인이 내놓은 해답의 하나는 “성을 쌓자”다.

유광종 기자의 키워드로 읽는 중국문화-담<1>

‘장성’ 하면, 총 연장 6000㎞에 달하는 만리장성(사진)의 거대한 그림자가 우선 떠오른다. 인류 문명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만리장성은 중국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춘추전국시대 8개 국가의 역사를 기록한 『국어(國語)』에는 ‘한데 마음을 모으면 성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 등장한다. 대중의 마음이 한데 뭉쳐지면 성벽처럼 견고해진다는, 왕의 실정(失政)에 대한 신하의 경고였다.

그러나 이 말은 요즘 중국인에게 달리 쓰인다. 무슨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의 뜻으로 성을 쌓자(衆志成城)’는 구호가 나온다. 비근한 예를 들어 보자. 2003년 중국에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SARS)이 전역으로 번졌을 때다. 막 취임한 국가주석 후진타오(胡錦濤)와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정권의 사활을 걸고 사스 진압에 나섰다. 이 즈음 베이징(北京) 골목골목에 나붙었던 표어 중 하나가 ‘우리 뜻으로 성을 쌓자’다.

다른 일화도 있다. 명(明)을 세운 주원장(朱元璋)이 지방 할거 세력을 거의 다 제압하고 곧 왕조를 세울 채비를 할 때였다. 그는 정치적으로 자문할 대상을 찾아 나섰다. 중남부 지역을 지날 때 그는 한 은자(隱者)를 만난다. 그의 이름은 주승(朱升).
주원장은 주승에게 왕조를 세워 이를 어떻게 경영할 것인지 물었다. 주승은 뜸을 들이다가 단 세 마디만을 내놓는다. “성을 높이 쌓고, 식량을 널리 모으며, 왕을 빨리 칭하지 말라(高築墻, 廣積糧, 緩稱王).”

정리하자면, 담을 높게 쌓아 국가의 안전을 우선하면서 근간에 해당하는 물자를 모으되 명분에 연연하지 말고 실질을 숭상하라는 충고다. 주승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주원장이 그를 찾아갔다면 그는 뭇사람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을 터다.

어쨌든 주원장은 이 세 마디 충고에 깨달은 바가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요식으로 끝났을지 모르는 칭왕(稱王) 순서를 뒤로 미룬 다음 자신에게 반항하는 나머지 지방 할거 세력을 진압하는 데 주력한다. 그리고 명 왕조를 세우는 데 성공한다.주승의 충고는 간결하지만 핵심에 닿아 있다. 국가의 기초를 닦는 데 이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힘을 분산시키지 않으면서 왕업을 이루는 자에게는 더 없이 실용적인 충고다.

주목할 것은 주승의 충고 첫 대목이다. 역시 담과 성채·장벽을 말하고 있음에 주목하자. 물자(식량)를 끌어모으는 일 앞쪽에 순위를 둔 게 이 담을 쌓으라는 권유다. 명분에 매달리지 말고 실질에 주목하라는 것에도 두 단계 앞서는 충고다.

중국이라는 국가에 걸핏하면 성을 쌓자는 구호가 터져 나오고, 위기 때면 마음을 한곳에 모아 성채를 구축하자는 말들이 나온다. 명 나라의 왕업을 이룩하는 데 가장 우선적으로 주목하고 그를 실제로 옮긴 것도 역시 ‘성(담·장벽)을 세우자’는 주문이었다.

우리는 이쯤에서 중국인과 담의 상관관계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유럽의 문명 발달사, 좁혀 말하자면 한반도의 왕조 흥망사를 잠깐 들쳐 보더라도 성과 담은 줄곧 반복해 등장하는 무대 장치다. 중국만의 현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중국인의 담과 성채에 대한 사랑은 다른 지역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유별나다. 사람의 사고가 생활양식과 이어지는 건축 분야에서 담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관념은 매우 뚜렷하다. 베이징에 들르는 한국인이면 꼭 거치는 명·청 때의 황궁인 자금성(紫禁城)도 유심히 살피면 담과 담이 공간과 공간 사이를 빈틈 없이 구획하는 장치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중국 고대 도시의 발전사는 담을 주축으로 하는 나누어짐의 세계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은 앞에서 꺼내든 만리장성이다.

베이징에서 1시간 정도 차를 달려 마주치는 가파른 산이 옌산(燕山)산맥의 줄기다. 인마(人馬)가 넘기 힘든 이 험준한 산줄기에 중국인은 높디높은 담을 쌓았다. 그 길이가 무려 6000㎞라면, 우리는 이제 심각한 눈길로 ‘중국인과 담’에 놓인 모종의 문명사적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


중앙일보 국제부·정치부·사회부 기자를 거쳐 2002년부터 5년 동안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한 중국통이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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