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관리 보통 어떻게 이뤄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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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全·盧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신한국당측이 김대중 (金大中) 씨를 두고 폭로전을 폄으로써 '은행 비자금' 이 또다시 문제가 되고 있다.

은행 비자금 관리의 철칙 (鐵則) 은 철저한 비밀보호다.

수익률은 문제가 안된다.

전주의 신원을 절대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시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가.차명 계좌를 이용한다.

가명계좌는 이름을 빌려주는 사람과 사전합의가 있어야 안전하다.

그렇지 않으면 명의상의 예금주가 나타나 언제든지 예금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 합의차명은 수적으로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차명에 대한 합의를 구하는 과정에서 비밀이 새어나갈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결국 대규모의 도명 (盜名) 계좌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은행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고객관리를 오래 맡아본 영업담당자들은 하루만에도 1백여명의 도명계좌를 틀 수 있다고 한다.

실명제 실시 이전에는 은행지점의 대리만 돼도 책상서랍에 도장을 수십개씩 가지고 있으면서 가명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이처럼 개인의 이름을 빌려 쓰는 경우도 있지만 금액이 클 경우 법인명의까지 빌리기도 한다.

실제 존재하는 기업의 이름을 빌리기도 하고 가공의 기업을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서 사채업자가 끼어든다.

사채업자가 사업자등록증을 만들어 유령회사를 차리고 전주는 이 업체 명의로 예금을 드는 것이다.

이 경우는 주로 기업금전신탁에 가입한다.

기업계좌이므로 수십억원대의 예금이 장기간 들어 있어도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한다.

또 수시입출금이 가능하면서도 이자도 보통 연11% 수준이다.

실명제 이전에는 양도성예금증서 (CD).채권.어음등을 무기명으로 굴릴 수 있었으나 실명제 이후에는 곤란해졌다.

만기때 이자를 받으면서 세금계산서를 떼는데 이때 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통시장에서 어음을 사들여 굴릴 경우 타인에게 넘기는 단계에서 배서 (背書) 하게 돼 신분이 노출될 위험이 있다.

금융계에서는 은행의 베테랑 직원의 조직적인 협조가 없이는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굴리기는 힘들다고 보고 있다.

동화은행의 경우 은행차원의 협조는 없었다고 부인하고 나섰다.

이형택 (李亨澤) 씨 혼자힘으로 장기간 거액의 비자금을 관리해 왔는지 여부가 앞으로 밝혀져야할 부분이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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