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통상정책 이중 잣대 "우리는 괜찮지만 한국은 안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미국은 이중 잣대를 가진 나라인가.

한국을 슈퍼301조에 의한 우선협상대상국관행 (PFCP) 으로 지정한 미국이 한국 자동차시장에 대해 강력히 시정을 요구하고 있는 내용 가운데 일부는 미국 스스로가 비슷한 제도를 시행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제도라도 미국이 하면 옳고 한국이 하면 '무역장벽' 으로 규정하는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통상전문가들은 정부가 앞으로 미국의 제도를 면밀히 연구, 모순되거나 비논리적인 요구사항을 협상에서 조목조목 지적하며 미국의 공세를 방어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음은 미국이 자동차부문에서 적용하고 있는 이중 잣대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 자동차세제 = 미국은 3만2천달러 이상 고급차에 대해 사치세 (LuxeryTax) 12%를 매기고 있다.

유럽연합 (EU) 은 지난 94년 이 제도가 고급차 중심인 유럽차의 대미수출을 막고 있다며 GATT (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제소했으나 GATT는 내·외산차의 차별조항이 아니라며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또 미국은 이미 75년부터 자동차회사별로 일정수준 이상의 평균연비를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하면 벌금을 매기는 기업평균연비제도 (CAFE) 를 시행중이다.

이제도는 국산차와 수입차를 구별해 평균연비를 계산하고 있어 내외산 차별정책이란 지적이 많다.

누진구조로 돼있는 우리의 자동차세제는 다소 불합리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결국 고급차, 기름 많이 먹는 차에 대해 중과세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이 두가지 제도와 비슷한셈이다.

◇ 자동차 관세 = 미국은 8%인 한국의 자동차관세를 2.5%인 자기네 수준으로 내리라고 한다.

그러나 현행 자동차관세율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우루과이라운드 (UR)에서 다자간에 타결된 양허관세다.

우리 관세가 유럽연합 (EU) 의 10%보다 낮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승용차관세는 2.5%지만 상용차관세는 이의 10배인 25%나 된다.

UR때 미·일협상에 의해 정해진 관세율이다.

미국은 한국자동차관세를 내리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자신의 상용차 관세율부터 내려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 소비자인식 = 미국서 판매되는 승용차·경트럭은 국산화율 (미국.캐나다에서 생산된 부가가치비율)을 표시하는 라벨을 붙이도록 규정한 자동차라벨링제도를 준수해야 한다.

라벨에는 북미산 부품의 조달비율, 최종조립된 국가·주(州)·도시이름, 엔진·트렌스미션의 원산지등을 상세하게 적어야 한다.

수출업체 입장에서는 방대한 기록과 서류를 갖춰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보다 큰 문제는 이제도가 미국 국민들에게 국산비율이 높은 제품을 구입하도록 유도한다는데 있다.

또 미국 정부나 주 정부는 정부구매입찰때 미국업체에 일정한 가산점을 주는 '바이아메리칸 (Buy American)'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의 소비자단체들만 국산품 애용을 선도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재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