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제영화제]동남아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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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연간 8백편 정도의 영화를 만드는 인도는 세계 1위의 영화제작국이자 아시아 최고의 영화수출국이지만 인도영화는 우리에게 여전히 낯설다.

세계무대에서 변방의 영화로 취급되는 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권의 영화들도 '미지의 영화' 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이들 제3세계권의 영화들은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경험 (식민지지배와 민주화투쟁 등) 을 토대로 하고 있어 의외의 친밀함을 느낄 수 있다.

7일 앞으로 다가온 제2회 부산국제영화제 (10~18일)에서도 인도와 동남아시아권의 영화들의 편수는 많지 않다.

인도와 태국영화가 각각 2편, 그리고 싱가포르.베트남영화가 1편 씩이다.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는 인도감독 부다뎁 다스굽타의 '붉은 문' 과 싱가포르의 신예감독 에릭 후의 '12층' , 베트남감독 르 호앙의 '먼 여행' , 태국감독 논지 니미부트르의 '댕 버럴리와 일당들' 이 초청됐고 경쟁부문인 '새로운 물결' 에는 인도감독 말라이 바타차리야의 '픽션' 과 태국감독 페넥 른탄루앙의 '펀 바 가라오케' 가 출품됐다.

인도영화의 특징은 내용과 형식, 언어의 다양함이다.

'봄베이영화' 가 오락영화의 대명사로 쓰일만큼 봄베이지역은 예로부터 상업영화가 발달했지만 50년대 중반 이후 좌파계열 주정부의 지원 덕분에 각 지방에서 봄베이영화의 관습을 배제하고 뚜렷한 사회적 주제와 형식을 추구하는 뉴웨이브의 물결이 일어났다.

'붉은 문' 의 부다뎁 다스굽타 감독은 60년대말 좌우파의 정치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있던 뱅갈 지역에서 발생한 제2의 뉴웨이브영화를 이끈 대표적인 감독이다.

캘커타대학 경제학강사이면서 시인이었던 다스굽타는 시에 한계를 느끼고 영화에 투신, 다큐멘터리를 찍은 뒤 78년 '거리' 로 데뷔했다.

좌익성향의 정치영화를 주로 만든 그는 국제영화제 등에서 명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붉은 문' 은 중산층의 위선에 점차 갑갑함을 느끼는 성공한 중년남성이 소년시절을 떠올리면서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추구해왔던 부르조아적인 나태함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모습을 담은 심리드라마극이다.

바타차리야의 '픽션' 은 논리적인 플롯없이 기존의 이야기 관습을 깨는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도 뉴웨이브영화의 맥을 잇고 있다.

동남아시아권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에릭 후의 '12층'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에 출품돼 좋은 평을 얻었던 작품이다.

싱가포르의 일반적인 주거형태인 고층아파트에 사는 세 가정의 하룻동안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마치 우리의 이야기를 보는 듯 친밀한 느낌을 준다.

정부의 통제와 억압을 상징하는 아파트의 규격화된 모습과 그 속에서 사는 싱가포르사람들의 소외와 고독이 대사가 별로 없는 영상으로 전달된다.

'댕 버럴리와 일당들' 은 70년대 이후 사회파 영화가 대두한 태국영화의 수준을 한차원 높였다는 평을 받는 논지 니미부르트의 데뷔작. 갱스터들이 많던 50년대 방콕 뒷골목을 무대로 깡패가 지배하던 시대의 분위기를 묘사했다.

'펀 바 가라오케' 는 서구화된 듯 하면서도 구시대적인 사고에 젖어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합리와 합리가 공존하는 방콕을 풍자한 작품이다.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트란 안 홍 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베트남은 호치민의 영향으로 다큐전통이 확고한 나라. 극영화에서도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고 전쟁과 관련된 주제를 주로 다룬다.

'먼 여행' 역시 전쟁 중 사망한 전우의 유골을 들고 그의 고향을 찾는 전 베트콩 장교의 여행을 통해 베트남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이 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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