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질병 다스리기]1.변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의사보다 환자가 똑똑해야 득을 보는 질환이 있다.

암이나 심장병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위중한 질환보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기나 소화불량이 대표적 사례다.

가볍고 흔한 질환일수록 의사보다 환자의 몫이 커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볍고 흔한 질환의 치료가 오히려 쉽지 않다는 것. 복제인간을 우려하는 첨단현대의학도 아직 속시원한 감기약 하나 내놓고 있지 못한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환자의 무지와 방심도 치료를 어렵게 한다.

소홀히 다루다가 오래 끄는 고질 (痼疾) 로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볍고 흔한 질환, 그러나 결코 치료가 쉽지 않은 질환의 극복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환자의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새로운 기획시리즈 '흔한 질병 다스리기' 를 시작한다.

변비환자들의 공통적인 아킬레스건은 대변혐오증이다.

대변이 더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장실에 가는 것을 꺼리고 용변행위 자체를 터부시한다.

변비환자의 무의식 속엔 결벽적으로 미를 추구하는 심리가 내재되어있다.

그러나 대변은 통념과 달리 더럽지 않다.

음식물찌꺼기와 죽은 대장균이 고형화된 덩어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위생적 관점으로만 본다면 땅에 떨어진 음식물이 대변보다 더욱 불결할 수 있다.

대변혐오증의 극복은 변비퇴치의 첫걸음이다.

화장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변의를 참거나 매일 아침 화장실에 가는 것을 자주 거르는 버릇은 만성변비를 초래하므로 삼가야한다.

숙변공포증을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숙변 (宿便) 이란 동.서양의학 모두에게서 인정되지 않는 조어에 불과하다.

대장에 대변이 남아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생리현상으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해롭지 않다.

오히려 강박적인 숙변제거를 위해 변비약과 관장.장세척을 남용하다보면 대변이 찼을 때 변의를 느끼는 배변반사기능이 떨어져 변비가 악화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변비치료는 대변혐오증의 극복에서 시작하지만 완결은 섬유소를 통해 이뤄진다.

채소나 과일에 많이 함유된 섬유소는 열량등 영양물질은 없지만 장관내에서 일정한 부피를 차지, 대변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바람직한 섬유소 섭취를 위해선 두가지 원칙이 강조된다.

하나는 물을 머금을 수 있는 함수성 (含水性) 이 좋은 섬유소라야 한다는 것. 콩나물.고사리.옥수수나 배추의 뿌리쪽 줄기부분등 단지 부피만 차지할 뿐 함수성이 낮은 리그닌 계열 섬유소는 변비예방효과가 작다.

양상치.당근.브로컬리등 주로 서양식 샐러드에 많이 들어가는 채소류가 함수성이 풍부한 헤미셀룰로오스 계열 섬유소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송인성교수는 "입안에서 씹을 때 물기가 질겅질겅 느껴지는 종류를 골라야한다" 고 충고했다.

두번째 원칙은 물을 많이 마셔야 섬유소의 변비치료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것. 소화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식사직후만 피하면 된다.

콩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일반인의 우려와 달리 물은 아무리 많이 마셔도 콩팥에 해롭지 않다.

홍혜걸 (전문기자·의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