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발 훈풍에도 금융시장 전망은 안갯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씨티그룹의 실적이 개선됐다는 소식에 모처럼 미국 뉴욕증시가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동안 정부가 쏟아부은 수백억 달러의 세금이 드디어 약효를 발휘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제야 끝이 보이지 않던 경기 침체의 바닥이 드러난 것 같다”는 낙관론까지 나왔다.

그러나 아직 바닥을 기대하긴 힘들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금융권 부실자산 처리, 동유럽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 등 여러 문제가 남은 만큼 이번 반등은 일시적일 거란 전망이다.

◆낙관론=10일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씨티그룹 비크람 팬디트 최고경영자(CEO)는 직원들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올 1~2월에 이익을 냈으며 19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고 밝혔다. 2007년 3분기 이후 최고의 실적이다. 이런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자 씨티그룹의 주가는 이날 38.1%나 올랐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약세장에서 공매도로 인해 주가가 더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업틱 룰(Uptick rule)’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트리번트 자산운용의 마이클 빙거 펀드매니저는 “당장은 아니라 해도 바닥이 꽤 가까워졌다”며 “지금이 주식에 돈을 넣을 때”라고 말했다.

◆신중론=월스트리트 저널(WSJ) 온라인판은 11일 시장에선 반등세가 일시적이란 의견이 더 많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3월 이후 이번처럼 증시가 5% 이상 급등한 적은 모두 네 차례다. 지난해 10월 13일엔 무려 11%나 올랐다. 그러나 이내 모두 이전 수준보다 더 밑으로 곤두박질쳤고 결국은 전반적인 하락세를 이어갔다. 이번 상승 역시 약세장에서 잠시 주가가 오르는 전형적인 ‘베어마켓 랠리(bear-market rally)’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금융시장에 불안요소가 남아 있다는 점도 신중론에 무게를 더한다. 특히 이번 씨티그룹 실적에는 부실자산으로 인한 상각 규모 등이 반영되지 않아 앞으로 계속 이익을 낼지 의문이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지나치게 비관론이 커져 있다는 인식에 금융시장이 반등한 것”이라며 “동유럽 국가 부도, AIG 등 대형 금융회사의 도산 우려 등 불안 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김필규 기자

◆업틱룰(Uptick rule)=주식시장에서 공매도로 인해 주가 하락 폭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정. 보통 공매도 세력은 주식을 빌려 시장에 내다 팔 때 시장가격보다 낮은 값에 내놓는다. 이 과정에서 주가가 떨어진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 아예 처음부터 가격을 더 싸게 팔 수 없도록 한 게 업틱룰이다. 미국에선 1929년 대공황 이후 이 규정을 만들었으나 2007년 SEC가 폐지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