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 신제품 "곧 나온다" 소문만 자꾸 내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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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한 회사원 김경수 (金敬洙.32) 씨는 새로 개발되는 PC용 운영체제 (OS) 나 워드프로세서등 소프트웨어 (SW)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이들 신제품 개발과 출시과정을 보고있노라면 '분통' 이 터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약속한 출시기간을 넘기기 일쑤고 심지어는 2~3년전 부터 분위기만 띄워놓고 정작 시판은 차일피일 미뤄 소비자들을 화나게 만든다니까요. " SW처럼 개발 시작에서부터 출시까지 뜸들이는 제품도 드물다.

이제 개발에 착수했으면서 "곧 나온다" 고 허풍을 떨면서 분위기를 몰아가 소비자들이 목을 빼게 만들지만 깜깜 무소식이다.

업체들에게는 비난이 쏟아지겠지만 이는 다 계산된 행위. SW 개발회사가 즐겨쓰는 페이퍼웨어 (Paper Wear) 전략이다.

페이퍼웨어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상품이라는 뜻. 신제품을 내놓기 오래전부터 '출시임박' 분위기를 조성, 소비자들이 타사 제품에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이 전략이다.

이 전략으로 크게 성공한 업체가 세계 SW업계를 쥐락펴락하는 마이크로소프트 (MS) .이 회사의 PC용 운영체제 '윈도95' 는 페이퍼웨어전략이 적중한 제품이다.

지난 93년 부터 네티즌들은 '시카고' 라는 코드명의 OS가 곧 출시된다는 소문에 기대감에 빠졌다.

이것이 윈도95인데 두번씩이나 발표를 연기, 소비자들을 목마르게 한 끝에 95년 8월에 가서야 출시됐다.

이 기간동안 고객들은 타 제품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결과는 1년만에 세계적으로 4천만 카피 이상 팔려나가는 대히트. 덕분에 윈도는 PC용 운영체제의 '표준' 으로 자리잡았다.

MS가 현재 개발중인 윈도95 다음 제품인 '윈도98' 도 페이퍼웨어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중. 이미 '멤피스' 라는 코드명으로 무성한 소문을 피운 뒤에 MS사는 지난 7월 협력업체 소식지인 '솔루션뉴스' 를 통해 11월부터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개발팀에서는 즉각 부인한 뒤 내년에야 시판이 가능하다고 슬그머니 뒷걸음치며 분위기 조성 중이다.

MS사는 "신제품의 출시시기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다" 고 주장하지만 은근히 정보를 흘리며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어잡는데 대해서는 이의 (異議) 를 달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MS정도는 아니지만 페이퍼웨어전략이 나타나고 있다.

한글과컴퓨터사가 이달들어 시판을 시작한 '한컴홈97' 은 지난 6월부터 출시설이 퍼졌던 제품. 회사측은 "최종 테스크기간이 길어져 시판이 연기된 것" 이라고 설명하지만 소문이 무성하게 나면서 고객들의 관심을 증폭시킨 것은 사실이다.

통신프로그램인 '이야기7. 5' 를 개발중인 큰사람정보통신사도 당초 신제품을 이달 초 출시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조금 늦춰진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그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커지면서 네티즌들 사이에 관심의 촛점이 되고 있어 벌써부터 상당한 홍보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페이퍼웨어전략이 SW업계에 널리 퍼진 이유에 대해 한글과컴퓨터 김택완 (金澤完) 이사는 "SW는 차기 성능향상 (버전업) 판이 계속 나와야하는데다 고객들은 신제품을 구입했더라도 다음 제품을 기대하는 심리가 강해 개발업체로서는 소비자들의 관심을 계속 묶어두기 위해 이 전략을 활용한다" 고 설명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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