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에 담긴뜻 "정부 앞장 허리띠 졸라 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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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년 예산안의 특징은 한마디로 '긴축' 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정부가 예산증가율을 5%대로 묶은 것은 정부부터 씀씀이를 줄여보자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평가할만 하다.

이같은 긴축예산은 내년 세수 (稅收) 증가율이 6.5%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할만큼 세금 걷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데 따른 고육책 (苦肉策) 이기도 하다.

실제로 재정경제원은 예산편성에 들어간 4월초까지도 내년 세수가 어느정도나 될지 가늠조차 못해 속으로 냉가슴을 앓았다.

정치권에서는 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요구를 쏟아놓지만 안그래도 어려운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주머니를 쥐어짜 세금을 더 거둘 수도 없고, 주식을 내다 팔자니 증시사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 한편 국제수지 방어대책 차원에서도 재정긴축의 필요성은 진작 제기됐었다.

정부부터 쓰임새를 줄여나갈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 때문이다.

강경식 (姜慶植) 경제부총리의 '뚝심' 도 정치권의 선심성 요구를 막는데 한몫했다.

매년 당정협의 과정에서 예산안이 수천억원씩 부풀려지던 관례를 깨고 정부가 들고간 내년 예산규모가 거의 그대로 확정된 것도 '강경식 (强硬式)' 밀어붙이기 덕택이었다.

그러나 내년 예산안은 긴축기조 속에서도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예산이 곳곳에 숨겨져 있는게 사실이다.

우선 국민총생산 (GNP) 의 5% 교육투자와 42조원의 농어촌 구조개선사업 예산이 전액 배정됐다.

정부는 당초 교육투자나 농어촌 구조개선사업은 효율성을 고려해 급하지 않은 것은 나중으로 미룬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당정협의 과정에서 대통령 공약이란 이유로 교육세율까지 올리는 무리수를 둬가며 뭉칫돈을 퍼줬다.

더욱이 교육투자 예산을 맞추기 위해 정부가 부담해야할 1조원의 재원을 예산에는 안잡히는 지방자치단체의 채권발행을 통해 충당하는 편법까지 동원됐다.

95년 40억원에서 올해 1백10억원으로 늘어난데 이어 내년에도 1백80억원이나 배정된 관변단체 지원예산도 선거를 의식한 대표적 사례다.

더욱이 관변단체 예산은 이회창 (李會昌) 신한국당 대통령후보가 총리시절 예산 낭비라며 대폭 깎아버렸던 것을 선거를 앞두고 다시 늘려 선심성 예산이란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1백억원이하의 타당성 조사비만 반영된 각종 지역개발사업 예산이 유난히 많은 것도 선거가 있는 해 편성되는 예산안의 특징이다.

세출예산보다 더 큰 문제는 내년 세수다.

내년 세수증가율 6.5%는 사상 최저치다.

그것도 교육세.교통세 탄력세율을 올리고 예산편성 기준환율을 달러당 8백80원에서 9백원으로 조정해 나온 수치다.

이런 요인이 없었다면 내년 세수 증가율은 3%를 넘지 않았을 것이란게 재경원 관계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결국 모자라는 세수를 메우기 위해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조세저항이 상대적으로 약한 간접세 비중을 늘리거나 봉급 생활자의 주머니를 짜내는 수 밖에 없어 조세 형평은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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