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무슨 죄, 왜 이렇게 미워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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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전 서울 신림동 원불교 신림교당 대법당. 영정 앞에서 아들에게 보내는 시를 읽던 김권찬(55)씨가 결국 엎드려 통곡했다. 경찰특공대원들의 울음소리도 함께 터져 나와 법당을 가득 채웠다. 1월 20일 용산 재개발 농성 현장을 진압하다 숨진 고 김남훈 경사의 49재가 열렸다. 가족·친척 외에 김석기 전 경찰청장 후보자와 경찰특공대 동료 등 40여 명이 참석했다.

용산 재개발 농성자 사망사건으로 숨진 고 김남훈 경사의 49재가 9일 원불교 서울 신림교당에서 열렸다.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右)이 49재가 끝난 뒤 김 경사의 아버지 김권찬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천도재 내내 눈물을 흘리던 김 경사의 아버지 김권찬씨는 “한 달 보름이 지났는데 마음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고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을 하다가도 멍하니 남훈이 생각만 하곤 하지요. 그러다 접촉사고를 두 번이나 내 택시도 더 이상 못 몰겠어요.”

그는 최근 개인택시를 팔기 위해 내놓았다고 했다. 고인의 어머니 최정숙(51)씨는 당뇨병과 고혈압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김씨는 “원래 심장이 약한 사람인데, 하루 종일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남훈이 사진만 붙잡고 운다”고 말했다. 이날 49재에서도 최씨는 손수건에 퉁퉁 부은 얼굴을 묻고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지난주 신분을 밝히지 않고 순천향대병원에 차려진 철거민 분향소에 다녀왔다고 했다. 봉투에 아무것도 쓰지 않은 채 10만원의 조의금도 냈다. “유족 분들이 풀이 죽어 앉아 계시는 걸 보니 내 일처럼 가슴이 찢어집디다. 우리 남훈이는 그래도 49재도 지내는데… 너무 가여웠어요.” 김씨는 정부가 나서서 유족들이 장례식을 치를 수 있게끔 해 달라고 요청했다.

“장례식 비용도 없다는데 참 큰일입니다. 지금 나가도 보금자리가 없는 분도 있을 것 아닙니까. 정부도 입장이 있겠지만, 그래도 정부가 아니면 이 사태를 누가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최근 용산 시위대가 경찰을 폭행한 사태에 대해선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사태가 이렇게 해결되지 않으니 화가 안 풀린 분이 많겠죠. 그렇지만 경찰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질서 유지를 담당하고 있으니 그렇게 나가는 것뿐인데….”

그는 “경찰이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 그렇게 맞고 다니니 우리 아들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경찰을 왜 이렇게들 미워하느냐’며 우리 남훈이도 가슴 아파할 것”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49재에는 지난달 사퇴한 김석기 전 경찰청장 후보자가 수염이 듬성듬성한 초췌한 모습으로 참석했다. 그는 “이번 일로 유명을 달리한 철거민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가족에게 애도를 표한다”면서도 “그분들과 김 경사는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희생했다는 것을 제대로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시위대의 경찰 폭행 사태에 대해선 “다시는 화염병·염산병·시너 등 폭력 시위로 사회 질서가 흐트러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호소했다.

임미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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