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오늘은 왠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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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웬지’ 기운도 없고, 온종일 졸리고, 일이 손에 안 잡혀!” 이런 증세가 나타났다면 봄이 시작됐다는 증거다. 계절에 따라 우리 몸도 순환하면서 뚜렷한 이유 없이 설렘이 찾아오기도 하고 공허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이럴 때 많은 사람이 “오늘은 웬지…”라며 다양한 얘기를 하지만 ‘웬지’란 말은 없다. ‘왜 그런지 모르게, 뚜렷한 이유도 없이’란 의미의 단어는 ‘왠지’다. “오늘은 왠지 무지 노곤한걸” “오늘은 왠지 일이 안 돼”처럼 써야 한다.

‘왠지’는 ‘왜+인지’가 줄면서 하나의 부사로 굳어진 말이다. ‘ㅐ’와 ‘ㅔ’의 발음 구분이 어려워서인지 ‘웬지’로 잘못 표기하는 일이 많지만 ‘무슨 까닭인지’로 바꿀 수 있는 말은 ‘왠지’로 적는다고 생각하면 쉽다.

‘웬’은 ‘어찌 된, 어떠한’이란 뜻의 관형사로 “웬 영문인지 도통 모르겠다”와 같이 사용한다. ‘웬일/웬셈/웬걸/웬만큼/웬만하다’처럼 한 단어로 굳어져 쓰이기도 한다. 이때의 ‘웬’도 의미상 ‘왜’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으므로 ‘왠 영문’ ‘왠일/왠셈/왠걸/왠만큼/왠만하다’와 같이 사용해선 안 된다. ‘왠’을 쓰는 경우는 “연둣빛 새잎을 보면 왠지 가슴이 뛴다”의 ‘왠지’밖에 없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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