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 직격인터뷰-주철환] ③ "처남 손석희에 그렇게 부탁 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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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잘나가던 주철환이 현장을 떠나 이대교수로 강단에 서더니, 7년 만에 다시 경인TV(OBS)의 CEO로 변신을 거듭했다. 질주였다. 하지만 최근 경인TV CEO를 ‘타의’로 그만두면서 처음으로 ‘실패’라는 평가와 마주하게 되었다. 세간의 관심이야 온통 그 부분에 쏠려 있지만, 오늘의 직격인터뷰의 주안점은 그의 ‘변신’이 아니라 ‘인간 주철환’에 있다.

꿈꾸는 낭만주의자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한 인간을 규정하는 기호는 대개 '직함'이다. 때문에 사람을 만날 때 ‘그’를 부를 마땅한 사회적 호칭이 없을 때 우리는 당황한다. 그를 두고 잠시 고민했다. 전(前) 사장, 전 피디, 전 교수라 부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리포터 안경에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수줍은 손을 내미는 그를 향해 유일한 현직 호칭인 ‘주 박사님’이라 부르기도 조화롭지 않았다. 그에게 물었더니 아무렇게나 부르라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이라 부르기로 했다.



Q. 다음 다섯 번째로는 어떤 변신을 할 계획인가요?

그건 감히 말할 수 없죠. 건방진 거예요. 마음으로 간직할 수 있지만 말로하면 교만하죠. 나를 원하는 사람의 제안을 받고 싶어요. 이를테면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누군가 요청한다든지.

Q. 지금까지 네 번의 변신이 모두 제안을 받아들인 수동적 변신이었다면 마지막 변신 역시 수동형일까요?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우울할 거라고? 9월을 기다려봐’라고 하셨던데요.

아마 그럴 거예요. 지금 걱정해주는 사람이 많죠. 친구들도 전화를 많이 하고요. 하지만 솔직히 어이가 없죠. 하지만 실제 그렇게 말하면 건방진 거죠. 그래서 그들을 안심시키려고 9월에는 뭔가 할 거야. 라고 말했죠. 사실은 아직은 아무런 계획도 없어요. 하하하.

Q. 상당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신데 왜 능동적 계획을 세우지 않나요?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 되기 싫어요. 지금도 매우 즐겁고 이 인터뷰도 유쾌해요. 박경철의 프리즘으로 비춘 나는 어떨까? 기대되죠. 예전에는 주철환이 만난 사람 이런 것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대상이 되어 행복하죠.

Q. 주례를 많은 선다고 알려져 있는데 주로 무슨 얘기들을 하시나요?

무지개를 보려면 비가 많이 내려야죠. 직전에 고통이 있는 것이에요. 한데 무지개도 한 가지 색이 아니라 일곱 색이나 있잖아요. 인생 역시 모자이크를 만드는 과정인데 그 과정만 보고 한 마디씩 거들죠. 여기는 검다, 여기는 텅 비었다, 이렇게요. 그러나 그것이 완성되었을 때 얼굴이라면요? 검은 것이 눈이고, 빈 것이 입일 텐데요. 그러니 불만으로만 너무 긴 시간 보내지 마라!고 말하죠.

Q.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친구가 중요하죠. 공자를 존경하는 이유도 논어 1장부터 ‘배워라! 왜 불만을 가져!’ 그리고 2장에는 ‘친구를 사귀어봐. 옛날 친구 연락도 좀 하고!’ 그리고 3장에서는 ‘그래도 불만 있어? 그럼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너무 화 내지마!’ 이렇게 말하잖아요. OBS에서 친구가 많이 생겼죠. 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나도 그들을 사랑해요. 얼마나 좋아요? 화내지 않고. OBS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이 바로 ‘얼마나 좋아?’ 라는 말이었어요.

Q.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어린아이 같아요. 어린아이의 특징을 가지고 있죠. 결국 순수하지만 유치하다는 말인데 유치한 것 인정해요. 그러나 순수하고 싶죠. 성경에 ‘어린아이의 얼굴이 아니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가 없다’는 구절이 있는데 나는 이 얼굴이 동안이 아니라 동심이라고 생각해요.

Q. 하지만 ‘OBS에서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는데요?

내게 괴로움 많았던 시기였던 것 인정해요. 하지만 OBS에서의 기억이 내게 흉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 적이 있지만 지금 보니 예방주사 자국이었어요. 이제 어떤 전염병에도 건강해진 거죠. 그래서 OBS는 내게는 성장통이었고 통과의례였죠.

Q. 처남인 손석희 교수는 어떤 사람인가요?

선택과 집중에 성공한 사람이죠. 시간의 평등과 효율에 관심이 많고 시선집중과 100분 토론만으로 일주일을 사는 사람이죠. 심지어 내가 대학가요제를 맡았을 때 그렇게 부탁을 해도 진행을 맡아주지 않더군요. 그 결과 1분 뉴스가 100분 토론이 되었으니 100배가 성장한 사람이죠. 그는 읽기를 거부하고 목소리를 냈어요. 그 점에서 존경스러워요.

Q. 자신의 삶을 평가한다면?

나는 눈치 보기로 살아온 인생이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이러면 인기영합주의자라 하겠지만 그건 아니에요. 진심으로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보는 대로 믿는다(seeing is believing)’라는 말을 항상 고민하죠. 누가 내게 이렇게 고민을 상담해요. ‘남들이 내게 건방져 보인대요’라고요. 그럼 저는 ‘너는 건방져’라고 말하죠. 남이 그렇게 말하는 게 걸리면 아예 개의치 말든지 아니면 신경 써서 고치든지 해야죠. 부족할수록 경쟁심이 많아져요. 샘(妬)이 많으면 자기의 샘(泉)이 없어요. 특히 사람에 대해 싫어하되 미워하지 말아야죠. 진부하지만 저는 사랑의 메신저가 되고 싶어요.

Q. 역설적으로 선생님의 이런 부분이 OBS에서 CEO로 적응하지 못한 이유가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기업은 적재, 적소, 적시를 중시하는데 이게 좀 어긋났겠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새도 되고 쥐도 될 순 없었죠.

Q. ‘새도 되고 쥐도 될 수 없었다’는 말은, 노(勞)의 입장도 사(使)의 입장도 모호했다 이런 뜻인가요?

‘이용의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이게 얼마나 가슴을 두드리는 가사인가요? 나는 강한 사람은 될 수 있으나 독한 사람을 될 수 없어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 그렇게 되게 한 1순위는 사장이죠. 그러니 나를 먼저 자를 것이라고 안심시켰죠. 대주주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학교라고 생각합시다. 저는 경영대학을 다니고 회장님은 교육대학원 공부를 제가 시켜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학교가 아니라 병원이었어요. 더구나 내가 의사로 온 게 아니라 환자로 온 경우거든요. 나중에는 빨리 퇴원해야겠다 싶었고, 더 시간이 지나니까 감옥 같아서 빨리 출소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더군요.

마치며

인터뷰를 끝내고 원고를 정리하면서도 그를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다. 주철환은 ‘꿈꾸는 낭만주의자’, ‘다빈치형 인간’, ‘제너럴 리스트’와 같은 진부한 표현으로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 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그가 스스로 부른 노랫말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이 한 대목이 기나 긴 낭만의 여정에서 팍팍한 다리를 두드리고 있는 ‘인간 주철환’을 표현하기에 그나마 가장 적합한 ‘응답’이 아니었을까.

박경철 donodonsu@naver.com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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