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의 영화 '창' 한가위 유혹 …창녀촌史 다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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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임권택 감독의 추석 신작 '창 (娼)' 은 도발적이고 호기심을 유발한다.

'창' 곧 사창가 혹은 매춘은 공식화될 수 없고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없는 인간과 사회의 부정적 요소이면서 엄연히 상존하는 것 중 대표적인 존재다.

영화 속에 펼쳐지는 7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창가의 변천을 보면 "몸을 파는 그들은 처음엔 생계를 위해 (70년대) , 다음엔 쉽게 돈을 벌기 위해 (80년대) , 그 후엔 즐기면서 돈벌기 위해 그런다" 고 묘사된다.

물론 전시대를 관통하는 것은 그들이 배운게 그것 뿐이라 그 짓 않으면 다른 일을 못하는 자기파괴의 함정에 빠져있음도 냉정하게 보여 준다.

1백분가량 계속되는 사창가와 관련된 삽화들은 경험자들에게는 쑥쓰러운 혹은 즐거운 (?) 공감과 회상을 불러일으키고 그 세계와 군상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이고 의아스러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다가온다.

林감독 스스로가 나서 열심히 '취재' 하고 사창가 인물로부터 '고증' 을 받았다는 유곽의 변화는 년대별로 방송뉴스들이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면서 시대순으로 묘사된다.

'창' 은 순진한 처녀로 창녀촌에 흘러 들어와 평생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 가는 주인공 (신은경) 의 기구한 삶이나 그녀를 동정하는 우직한 청년 (한정현) 의 이야기로 엮어지는 멜로드라마인가.

감독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재미있게 인물과 사건이 얽혀 가는 드라마 구조에 주안점을 안뒀다고 한다.

저열한 환락의 세계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출시키는 것만으로 우리의 무뎌진 감각과 도덕적 수치심을 공격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고 한다.

수많은 섹스 장면들은 결코 아름답지 못하고 관객들이 눈요기로 감으로만 보고 앉아 있기에는 불안하게 만든다.

특히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은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인육의 욕망들을 롱테이크로 잡은 화면이 바로 이 영화의 힘이다.

완성된 이야기 구조에서 시작한 작품이 아니고 3개월여 비교적 짧은 촬영기간에 만들어진 '창' 은 관객을 설득시키겠다는 것보다 일단 자극을 주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의 무게가 실린 곳은 창녀의 모습으로 나오는 수백명의 여자들이 파노라마처럼 놓여진 사창가의 미장센들이지 감동적인 서사구조는 아니다.

영화를 다 보고난 뒤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는 신은경이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가 십상이다.

영화가 드러내는 사창가의 현실이 롤러코스터처럼 정신없이 다가오고 인간이 만들어놓은 개운치 못한 진실에 짓눌리고 말기 때문이다.

'창' 이란 영화말고도 음탕한 놀이를 즐길수 있는 매체는 오늘날 넘쳐 흐른다.

영화는 결국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창가를 드나들고 그것을 훔쳐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음란함을 고발한다.

고발 이유는 우리 모두가 어두운 '창' 의 세계를 속수무책으로 내버려두었다는 것이다.

헬멧을 쓰지 않고 오토바이를 몰아 경찰에 잡히는 장면이 중간과 결말에 환유적으로 나오듯 별 생각없이 덮어두었던 '창' 의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林감독은 "우리가 풍요로운 물질문명의 세계를 즐기면서도 분명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다행" 이라고 언급했다.

영화에 따르면 '창' 의 세계는 흔히 여기듯 '필요악' 이 아니라 아플 때만 자극적인 약을 쓰는 고질병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완전히 치유할 능력은 누구에게도 없다.

그에 대해 무감각하게 썩어 들어 가지는 말자는 것이다. 13일 개봉.

채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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