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디즈니 손대기 전 동화의 맨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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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세계의 동화
크리스치안 슈트리히 엮음
타트야나 하우프트만 그림, 김재혁 옮김
현대문학, 688쪽, 5만8000원

아마도 신데렐라 이야기에서 가장 긴박감 넘치는 장면은 신데렐라가 자정을 알리는 시계종이 울리기 전에 왕궁의 무도회에서 황급히 돌아오는 대목일 것이다. 자정 넘어 마법이 풀리면 아름다운 드레스도, 멋진 유리구두도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된다는 조건은 당초 숲 속 요정이 신데렐라의 소원을 들어줄 때부터 정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 극적인 귀가 장면은 그림 형제의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다.

원작에는 첫 눈에 반한 왕자가 집에 데려다 주려 하자 정체가 탄로날까 두려워진 신데렐라가 왕자의 추적을 피해 스스로 도망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신데렐라 집을 찾아 구두의 임자를 확인하는 장면도 원작에서는 끔찍하다. 신발에 맞춰 큰 언니는 발가락을, 작은 언니는 뒤꿈치를 잘라 버려 왕자를 거의 속여 넘길 뻔했지만 신발이 피로 시뻘겋게 물드는 바람에 들통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판 신데렐라 스토리는 말하자면 원작에 당의를 입힌 보급판인 것이다.

독일 작가인 편역자가 십 년 넘게 수집한 수 천 편의 동화와 민담 중 100편을 가려 뽑은 '세계의 동화'는 화장하지 않은 동화와 민담의 맨 얼굴을 만나게 해준다. '세계'라고 제목 붙였지만 독일의 그림형제, 프랑스의 샤롤 페로, 덴마크의 안데르센 등의 동화와 아일랜드.그리스.불가리아.세르비아-크로아티아 민담 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유럽의 동화' 쯤 된다. 익숙한 얘기들도 있지만 낯설고 기괴한 얘기들이 많아 상상과 환상의 세계로 데려간다. 5년 넘게 작업했다는 삽화가의 그림들은 무엇보다 눈을 즐겁게 한다. 100가지 이야기가 담긴 두툼한 책 보따리는 어린이날 훌륭한 선물이 될 듯 싶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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