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예산증액,경제현실에 맞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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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가 경제의 족쇄라는 말을 한번 더 깊게 실감토록 한 것이 내년 예산에 대한 집권당의 불감증에 걸린 듯한 방만한 태도다.

위기로까지 불리는 현재의 경제불황 때문에 내년 예산은 올해보다 5%만 늘리는 선에서 억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결론이었다.

그런데 대선 (大選) 을 앞둔 정치권의 욕심 때문에 고도성장 시절의 관성 (慣性) 을 조절하려던 시도는 실패하게 됐다.

당정 (黨政) 회의에서 당측의 예산증액 압박으로 인해 내년 예산은 올해에 비해 6.5% 늘리기로 합의됐다.

지출이 늘면 그것을 뒷감당할 세입도 늘어나는 수밖에 없다.

달리 염출할 방도가 없는 정부로서는 세율을 올리는 무리수로 나가는 길밖에 없게 됐다.

내년부터 교육세율을 10%, 경유 (輕油) 교통세율을 30% 인상하기로 한 것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 는 속담은 간절한 경험법칙을 그 속에 담고 있다.

이런 불황때 이런 세목 (稅目) 의 세율을 인상하지 않고는 세입을 늘릴 방도가 없다는 것은 다리를 뻗을 자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다시 되돌아와서 지출을 더 줄이는 효과적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유류교통세와 교육세는 몇몇 소비세에 부가해 부과하는 목적세다.

사용목적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목적세지만 어디까지나 소비세다.

소비세율의 인상효과는 가격상승과 소비억제로 나타난다.

불황에 고통받는 경제에 부담을 늘리는 것이 옳은 종류의 세금도 아니고 불황을 치유하는데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세목은 더욱 아니다.

내년 예산을 5%만 늘린다는 것도 지금 경제현실에서는 결코 소극적인 숫자가 아니다.

그럴 때 늘어나는 3조원 내지 4조원만 해도 나라살림을 규모있게 해나가겠다는 결심만 서면 많은 새 일을 해낼 수 있는 큰 금액이다.

그리고 이 정권의 공약사업인 농어촌구조개선사업과 교육투자사업은 각각 42조원과 62조원이라는 액수 달성에만 의미를 주는 것이 능사도 아니다.

그 내용을 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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