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가새물결]변하는 증권사 임금체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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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불황 여파에 따른 감원바람으로 평생직장 개념이 흐려지고 있지만 증권사만큼 급진전되고 있는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무쇠 밥그릇' 의 대명사인 은행의 경우도 지난해와 올 상반기에 대규모 명퇴를 통해 몸이 가벼워질대로 가벼워져 일부 부실 은행을 제외하곤 감원 폭은 예전보다 심하지 않다.

하지만 증권사들 대부분은 지난해까지 명퇴를 끝내고 올해부터는 연봉제를 전격 도입해 언제든지 불필요한 인력을 솎아낼 체제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연봉제를 실시하고 있는 증권사는 대우.동원.동양.유화.동부.한화.동방페레그린.한누리살로먼.환은스미스증권등 모두 9개사. 또 보람.LG.대신이 내년부터 실시키로 했고 동서증권은 노동조합과의 최종협의만 남겨두고 있다.

이밖에 교보.장은.한양.한진투자.신한.선경.동아등 7개증권사가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내년부터는 34개 국내 증권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회사가 연봉제를 실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적어도 이들 증권사 직원에게는 앞으로 평생직장이란 말은 다른 나라 얘기가 돼 버린 것이다.

연봉제 도입으로 연공서열에 의한 임금체계는 허물어지고 능력에 따른 급여체계가 형성되므로 임금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게 마련이고 임금수준이 하위로 떨어지는 직원은 회사에서 배겨나기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4월 연봉제를 도입한 대우.동원.동양등 3개사의 경우 연봉제 시행으로 3개월만에 5천만원가량의 보너스를 받은 직원이 나왔는가 하면 그 전보다 월급이 깎인 직원도 동원증권의 경우 전체 직원의 10%가량 쏟아져 나왔다.

이들 증권사들은 기본급을 종전대로 유지하고 연간 8백%의 보너스를 4백%로 낮췄기 때문에 최고와 최저 연봉차이가 보너스 4백%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벌어진다.

직원들에게 치열한 살아남기 경쟁을 강요하는 이 연봉제로 기업이 마냥 덕을 보는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게 된 직원들이 몸값에 따라 언제든지 회사를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봉제를 도입한 증권사들은 대부분 중간정산제를 실시해 퇴직금을 근무중인 직원들에게 지급함으로써 '퇴직이후' 에 대한 대비를 하도록 하고 있다.

40대 부장급이라면 1억원안팎인 중간 정산금을 챙길수 있는데 이를 종자돈으로 삼아 부업을 벌이는 등 퇴직준비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연봉제는 자신의 능력에 맞는 직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한다.

실제로 D증권사의 한 직원은 자신이 회사에 연간 20여억원의 수익을 벌어다 주고 있음에 불구하고 연봉이 만족스런 수준이 못되자 수익의 30%를 지급받기로 하고 경쟁사로 옮긴 경우도 있다.

20억원의 수익을 낼 경우 그의 연봉은 월급쟁이들이 꿈도 못꿀 6억원이나 되는 셈이다.

증권업계의 이같은 연봉제 도입 러시는 지난 94년이후 3년째 지속되는 증시침체로 수지가 급격히 악화된 반면 인원은 그대로 유지돼 인건비 절감없이는 회사의 생존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지난 1일부터 시행된 주식 위탁수수료 자유화로 수익감소가 불보듯 뻔해 본격적 수수료 인하경쟁이 붙기 전에 연봉제로 미리 전열을 정비해 두자는 의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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