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희의 스토리가 있는 명품<6> 레이디 디올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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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는 나에게 짝사랑의 대상이었다. 대학 진학 때 불문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가정선생님이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정관리학과로 전공을 택했다. 대학을 졸업 후 직장 생활 중에 유학을 고민했으나 이 또한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에 의해 좌절되었다. 그렇게 두 남자로 인해 무산된 파리와의 인연은 그로부터 한참 뒤에 이뤄졌다.

 2000년, 쇼핑호스트로 일하던 중 파리 출장이 잡힌 것이다. 설렘을 안고 파리에 도착한 첫날 밤, 눈부시게 반짝이던 에펠탑을 보던 흥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출장 일정이 끝난 마지막 날. 아름다운 작은 상점들과 멋진 가로수에 취해 몽테뉴 거리를 걸으며 마치 파리지엔이 된 양 여유를 만끽하던 중, 한 건물 앞에 멈춰섰다. 크리스찬 디올 매장이었다. 사랑스러운 핑크빛 장식으로 가득찬 쇼윈도는 화려함 그 자체였다. 고급스러운 매장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잠시 망설이다가 큰 마음을 먹고 안으로 들어갔다. 럭셔리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중년의 파리 여성들이 느긋하게 쇼핑을 하고 있었다.

 “와…, 예쁘다.”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던 디올의 화려한 의상들을 보며 ‘예쁘다’를 연발하던 나. 한 여자가 돌아보며 물었다.

 “한. 국. 사. 람. 이세요?” 5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외국여성이 나를 보며 한국말을 했다.

 남편의 일 때문에 잠시 한국에 1년 반 정도 머무른 적이 있다는 그녀는 서툰 한국 말로 반가워했다. 한국에서 친구를 사귀면서 열심히 한국말과 한국요리법을 배웠는데 갑자기 파리로 돌아오게 되어서 아쉬움이 크다고 말했다.

 조근조근 얘기하는 나지막한 음성은 우아함과 지적인 매력을 느끼게 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멋진 여행을 하라는 인사와 함께 그녀는 매장을 떠났다. 우아한 뒷 모습은 언젠가 내가 꿈꾸던 중년 여성의 모습이었다. 매장을 떠나는 그녀를 보다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손에 얌전하게 들린 ‘레이디 디올백. 어쩜 그렇게 근사해보이던지….

 많은 패션잡지와 디올 매장에서 레이디 디올백을 봤지만 그날처럼 그렇게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핸드백은 여성의 또 다른 아이콘이라는 말에 공감하면서 말이다.

 명품 브랜드마다 유명인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통해 브랜드의 대표 아이템으로 자리잡게 된 제품들이 있다. 크리스찬 디올의‘레이디 디올백’도 그 중 하나. 비명에 사망한 영국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생전 공식석상에 나설 때마다 자주 들어 주목받게 된 백으로, 1995년 ‘슈슈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시되었다. 프랑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의 부인이 다이애나에게 선물했고 백을 마음에 들어하던 다이애나가 즐겨 사용하면서 알려졌다. 이후 크리스찬 디올은 백 이름을 아예 ‘레이디 디올’로 바꿨다. 할리우드 여배우들과 패션 리더들의 손에 하나둘씩 들려지기 시작해 출시 이듬해인 1996년 전세계적으로 품절사태를 빚으며 핸드백 판매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세기의 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표적인 명품 핸드백이 되었다.

 레이디 디올 백은 여러 가지 색상과 사이즈로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다. 네모난 몸판 부분은 바둑판 모양처럼 가로 세로로 퀼팅되어 있으며, 그 위에 한번 더 마름모 모양으로 박음질되어 있다. 디올백의 손잡이와 몸체를 연결하는 금색장식 고리와 손잡이에 달려 있는 알파벳 ‘D.I.O.R’의 액세서리 장식은 디올만의 이미지를 느끼게 하는 동시에 명품 마니아들의 자부심을 높여주는 포인트다.

 뉴 버전으로 생산되고 있는 레이디 디올백은 나의 위시 리스트에 올려져 있기도 하다. 언젠가 내 손에서 우아하게 빛을 발할 날을 기대해본다.

▶ 자료 제공= (주)유아짱 (www.uajjang.com)


유난희는… 명품 전문 쇼호스트로, 현재GS홈쇼핑에서 <명품컬렉션 with 유난희>를 진행하고 있다. 공주영상대 쇼호스트학과 교수. 저서 『명품 골라주는 여자』 『아름다운 독종이 프로로 성공한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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