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의 테레사 수녀 추도…소외된 삶을 구원한 순례의 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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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마더 테레사께

당신의 눈 속에 들어있는 높고 푸른 하늘을

가까이에서 본 그날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반세기 동안 쏟아부은 당신의 사랑은 캘커타를 넘어 세계로 흘러가고 이제 당신은 예수를 가장 많이 닮은 순례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당신의 두 손을 잡고 싶어할 때마다 괴로운 듯 나직이 말씀하십니다.

"오 나는 성녀가 아닙니다.

나를 보고 싶거든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세요"

오늘도 맨발로 빈 손으로 이 세상 끝까지 달려가는 평화의 어머니여 주름살 투성이의 당신을 생각하면 어머니를 닮지 못하고 서성이는 저의 편한 삶이 부끄러워 오늘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지난 81년 마더 테레사가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에 왔을 때 나는 잠시 TV화면을 통해 그분의 모습을 보았고, 그 단순하고도 확신에 찬 말씀과 정감이 느껴지는 진실한 목소리에 감명을 받았다.

뜻밖에도 94년 12월 평화방송 TV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일원으로 직접 뵐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 무척 기쁘고 설레는 마음이었다.

그녀는 가장 허름한 사리에다 구멍난 스웨터를 걸친 맨발의 여인. 이미 한쪽 귀는 잘 안들리고 심장도 정상이 아니면서도 50여년전 사랑의 선교수녀회를 창설한 이후 오늘까지 줄곧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랑에 헌신해온 이 시대의 어머니셨다.

가난한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온 몸과 마음으로 봉사해온 마더 테레사는 인생의 목적은 세속적인 성공이나 명예가 아니며 우리도 예수처럼 사랑에 살고, 거룩하게 될 의무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힌두교인.회교인.불교인 친구들도 많고 그들로부터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웃으며 설명하시던 마더 테레사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특히 예수.하느님.가난한 이들에 대해 얘기할 때 그의 두 눈은 빛났으며 그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그분의 개인적인 성장과정과 가족관계, 힘들었던 일이나 에피소드에 대해 질문 할라치면 어느새 그 내용은 비켜가고 예수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얘기로 다시 돌아와 있곤 했다.

그녀에겐 오직 현재만이 전부며 가족들조차 싫다고 내다 버리고 외면하는 비참한 몰골의 사람들, 영육으로 외롭고 목마르고 굶주리고 병들어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마음의 상처와 슬픔으로 가득찬 가난한 사람들만이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인 것같았다.

그래서 그녀의 수녀원엔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난한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들은 수녀원을 자기집처럼 마음놓고 들락거리고 있었다.

비굴함과 원망이 섞인 표정보다 부드러운 미소와 평온함을 지니고 있던 그 골목길의 가난한 이들을 잊을 수 없다.

스스로를 '가난한 이의 대표' 라고 말하던 마더 테레사의 부드럽고도 강인한 눈빛은 오늘도 우리 모두에게 안일한 삶의 태도와 이기적인 욕심을 버리고 이웃을 위한 사랑에 헌신해야 한다고 조용히 재촉하는 것만 같다.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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