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오해 자초하는 경제관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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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기아 문제에 대해 정부는 초기에 답답하리만큼 말을 아꼈었다.

기껏해야 시장원리에 따른다든지, 채권단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식의 원칙론만 되풀이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정반대로 태도가 달라졌다.

너무 말이 많아져 도리어 오해의 소지를 낳고 있다.

"법정관리든, 은행관리든 어떤 형태로든 기아자동차를 정상가동시키겠다" "아시아자동차는 모 대기업이 인수에 뜻이 있는 것으로 안다.

" 지난 3일 강만수 (姜萬洙) 재정경제원차관의 이같은 발언도 그런 예다.

기아를 죽일 의도가 없다는 정부의 의지를 강조하다보니 이런 말이 나온 듯하다.

그러나 '기아를 살릴지 죽일지, 살린다면 어떤 식으로 살릴지 등은 전적으로 채권금융단이 결정할 문제' 라고 여태까지 해온 말과는 분명히 상치되는 것이다.

시장원리 운운은 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은 정부 의도는 그게 아니라는 이야기인가.

윤증현 (尹增鉉)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은 부도유예협약의 악용사례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협약이 없었으면 지금쯤 기아 문제는 오히려 수습단계에 접어들었을 것" 이라고 말해 역시 오해를 불렀다.

부도유예협약의 부작용에 대한 사전검토가 그토록 허술했다는 말인가.

강경식 (姜慶植) 부총리도 처음부터 김선홍 (金善弘) 기아회장에 대한 불쾌감을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냈었다.

물론 姜부총리를 화나게 한 원인이 金회장의 정부음모론에서 비롯됐다고는 해도 역시 金회장에 대한 직격탄을 계속 날리는 바람에 쓸데없는 오해를 증폭시킨 결과가 되고 말았다.

정부 당국자들의 말 한마디는 이처럼 일파만파 (一波萬波) 를 부르기 십상이고, 때로는 원래 의도와는 달리 부풀려지거나 곡해돼 전달된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 더 많은 말을 하다보면 더 큰 오해를 낳고…. 당장 밥줄이 위태로워진 기아 직원들과 1만7천여 기아 협력업체의 가족들은 정부에서 한마디 하면 '행간의 뜻' 까지 유추해가며 일희일비 (一喜一悲) 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외국의 눈초리도 무섭다.

정부 관리들이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말을 아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기아에 대한 지원문제나 향후 처리문제는 채권자인 금융기관과 채무자인 기아 쌍방에 맡기는게 옳다.

이같은 사실을 정부관리들이 누구보다 잘 알텐데 안타깝다.

마음은 시장경제인데 말과 행동은 관치금융 당시의 습관이 배어 있어서일까.

고현곤 경제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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