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에서]10.여주 이포나루 (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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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이포 (梨浦)에 가면 무엇보다 먼저 텅빈 강둑에 묶인 '임자없는 나룻배' 만이 눈에 들어온다.

낡을 대로 낡은 목선 대여섯 척만이 아무렇게나 탁한 강물 위에 떠있을 뿐 이포에는 나루터도 뱃사공도 간데 없다.

한때 서울의 마포.광나루, 여주 조포나루와 더불어 한강의 4대 포구중 하나였던 이포나루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이포리) .하지만 지난91년 다리 (이포대교)가 놓이면서 나루터도 뱃사공도 사라진지 오래다.

부서질듯 낡은 목선도 기실 길손을 건너다 주는 나룻배가 아니라 고깃배다.

"사공은 물론이고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는 이도 이젠 없지요. 강고기도 예만큼 잡히지 않습니다.

물빛도 영 옛날같지 않으니…. "

이포나루에서 유일하게 고기잡이를 업으로 하고 있는 고광원 (67) 씨. 그만이 이포나루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고씨는 17년전 이포나루의 풍광에 끌려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이포의 어부로 정착했다.

그는 "수년전까지만 해도 깊은 물속까지도 훤히 보일 만큼 맑은 물에 쏘가리.배가사리.메기.갈무치등 강고기가 지천이었다" 고 회고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쩌다 투망질을 하느라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온몸에 피부병이 생길 정도로 강물의 오염이 심각하단다.

그는 해질녘 목선을 끌고 강심으로 나가 지렁이 미끼가 달린 주낙을 물속에 던져놓고 돌아온다.

그리고 이튿날 새벽 주낙을 걷어온다.

예전에는 서울에서 도매상들이 들락거리며 고씨의 강고기를 실어갈 정도로 많이 잡혔지만 갈수록 '고기가뭄' 이 들면서 아예 도매상들의 발길이 끊어졌다.

그는 "고기잡이라고 해봐야 동네 식당에 매운탕거리로 건네주고 겨우 용돈 벌어 쓸 정도" 라며 허탈하게 웃는다.

강 건너는 여주군 대신면 천서리. 강폭은 3백여m. 이포나루가 생긴 것은 무려 6백년전인 고려말이라고 한다.

긴 세월 나루터는 숱한 사연을 남겼다.

조선조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났던 단종도 이 나루터를 건넜다. 50년대까지만 해도 강원도 영월의 장작이며 이천.양평의 미곡을 실은 황포돛배가 드나들었다.

부친에 이어 2대째 이포나루를 지켜온 이포나루의 마지막 뱃사공 장태봉 (59.이포리 186) 씨. 다리가 놓이던 날 그는 사공을 그만두고 농사꾼이 됐다.

길손도 사공도 떠난 이포나루의 주말. 강바람을 쐬러 몰려온 강태공들은 다리에서 상류까지 촘촘히 강변에 나앉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낚시자리가 바로 이포나루였는지 조차 모른채 무심히 낚싯대만 던질 뿐이다.

이포나루에 대한 기억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안내판 정도는 있을 것도 같은데 아무 것도 없다.

이포나루 위에 있는 '나루터장어구이집' 같은 간판만이 겨우 나루터에 대한 추억을 되새겨줄 뿐이다.

여주 = 이순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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