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진출 방송PD들 대부분 흥행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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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방송사와 방송국PD들의 영화계 진출 성적표는 어느 정도일까. 지난해 초부터 MBC와 SBS를 필두로 논의되기 시작해 올초부터 복합영상매체로의 변신을 선언하면서 방송사들이 추진해 온 영화진출이 속속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방송의 충무로 진출은 몇가지 흐름으로 나뉘어서 이뤄져 왔다.

방송에서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은 대어급 PD가 외부 자본과 결합해 영화제작에 나선 경우가 첫째 흐름이다.

SBS '모래시계' 의 김종학 (제이콤) , MBC '공화국시리즈' 의 고석만 (드림서치) PD가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MBC 이진석PD ( '체인지' ) 와 KBS PD출신의 이현석 ( '용병이반' ) 등이 가세했다.

직접 자본투자와 자사PD를 동시에 투입한 MBC 황인뢰의 '꽃을 든 남자' 가 또다른 흐름을 이뤘고 여기에 '3인조' 처럼 방송사가 전액을 투자하고 제작은 충무로 (시네2000)에 맡긴 SBS식 진출법이 이어졌다.

이중 흥행성을 일부 확보한 이진석PD의 경우를 빼면 "아직까지는 기대이하" 라는게 중평이다.

김종학의 경우 본인의 작품이 직접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제작자로 나선 작품들인 '인샬라' '바리케이드' 등이 관객을 많이 모으지 못했다.

'쿠데타' (김종학) 와 '제이슨 리' (고석만) 는 제작이 무한정 늦춰지고 있다.

당초 8월 중순에 개봉될 예정이었다가 11월로 연기된 MBC '꽃을 든 남자' 도 시사회에서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SBS가 제작비전액을 투자한 '3인조' 의 경우 가까스로 투자액을 회수하는 선에서 그쳤다.

방송사와 방송PD의 이같은 고전에 대해 영화평론가 양윤모씨는 "비교적 간단하고 안정된 방송제작 관행에 익숙해 있던 PD들이 복잡다기한 영화제작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기 때문에 겪는 예견된 결과" 라고 분석한다.

그는 "방송과 영화는 유사하지만 분명 다른 영상분야다.

따라서 아무리 방송에서 맹활약하던 PD들도 충무로에서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또다른 평론가는 "극장영화보다 앞서 활발하게 TV영화를 제작하는 독립프로덕션이 활성화돼 있는 미국과 달리 프로덕션을 질식시키고 있는 국내 방송사의 풍토에서는 방송PD의 성공적인 영화데뷔는 기대난망" 이라고 단언한다.

방송의 영화진출을 바라보는 충무로의 시각은 결국 "자본투자는 환영하지만 제작자체는 완전히 다른문제다" 로 귀결된다.

SBS식을 환영한다는 얘기다.

한두작품의 성과를 전제로 성급한 평가를 경계한 MBC프로덕션 이상로 영화팀장은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다음 작품에는 충무로의 노하우와 인력을 적극 수용하되 자사PD를 고집하지는 않을 것" 이라고 밝혔다.

본격 TV영화를 표방한 '신TV문학관' 의 실험을 잠정 중단한 KBS는 "흥행여부와 투자비 문제로 당분간 영화진출 계획은 없다" 는 유보적인 입장이다.

방송의 영화진출 초반 성적표는 일단 '기대 이하' 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기를 기대하기보다 영상산업 활성화를 위해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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