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개막무대 체면세운 권윤경…97서울국제음악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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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바이올리니스트 권윤경은 승부욕이 강한 연주자였다.

쏟아지는 청중의 시선을 즐기면서 음악으로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훌훌 다 털어놓았다.

첫 국내 협연무대라는 기회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국내 청중에게 충분히 각인시켜 주었다.

권윤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치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야무진 구석이 있었다.

악보를 뒤쫓아가기 바빴던 오케스트라의 부진을 충분히 만회했고 오히려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갔다.

충분한 연주효과를 내면서도 감정이나 테크닉의 심한 기복은 없었다.

연주에 뜨겁게 몰입하면서도 한편으로 냉정하게 항상 전체적인 흐름을 염두에 두는 지혜를 겸비했기 때문이다.

2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화려한 팡파르를 울린 97서울국제음악제 개막공연은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을 연주한 권윤경의 활약으로 체면을 세운 셈이다.

로시니의 '제미라미데 서곡' 에 이어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8번' 을 들려준 유로아시안필하모닉 (지휘 금난새) 은 유럽과 중국.한국 연주자들이 뒤섞인 다국적 교향악단. 짧은 연습기간 탓인지 뛰어난 개인 기량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앙상블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는 리듬의 관성 (慣性)에 의존하는 부분에서는 눈부신 합주를 들려주었으나 나머지 부분에서는 다소 엉성한 처리로 음악의 맥이 자주 끊기는 결과를 낳았다.

프로그램 이 끝난 다음의 해프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게 관례지만 주최측인 예술의전당.한국음협에 대한 감사의 말은 리셉션으로 미뤘어야 옳았다.

앙코르곡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지휘자의 장황한 설명이 끝난 후 애국가가 연주되자 청중들은 안절부절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지휘자의 요구로 어색하게 따라 불렀다.

국내 유일의 '국제음악제' 개막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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