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4조5000억원 날린 T-50의 수출 좌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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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호 02면

정부가 국내서 개발한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을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하려던 계획이 좌절됐다.

UAE 정부가 25일(현지시간) 차세대 훈련기로 이탈리아 알레니아 아에르마키의 M-346을 선정했다고 공식 발표한 것이다.

T-50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13년간 2조원을 투입해 개발한 훈련기로 노무현 정권 때인 2005년부터 4년 넘게 UAE에 수출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성사됐다면 30억 달러(한화 4조5000억원)가량의 외화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미국과 통화스와프로 확보한 300억 달러의 10분에 1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싱가포르·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와의 수출 협상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이런 빅딜이 깨졌으니 협상을 추진했던 당사자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애초에 항공 후진국인 우리에게 이탈리아는 버거운 상대였을 수 있다. 그러나 협상 과정을 되짚어 보면 마케팅 전략의 부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T-50의 성능이 경쟁 기종인 M-346을 압도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수조원대의 항공기 수출은 단순히 항공기만 파는 것이 아니다. 구매자는 자국 항공산업 발전은 물론 경제 전반을 활성화시킬 목적을 갖기 때문에 이를 반영한 국가 차원의 전략을 짜야 한다.

정부가 이를 몰랐을 리는 없다. 그동안 30여 개의 산업협력 프로젝트를 제안했지만 UAE 쪽에서 답이 없었다는 해명이 있었다. 그러나 UAE 국방책임자인 셰이크 모하메드 아부다비 왕세자는 지난 1월 UAE를 방문한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한국에 어떤 산업지원책을 제시할지 질문서를 보냈으나 답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우리가 보낸 제안이, F1경기장을 지어 주고 국제 경기를 유치해 주겠다는 이탈리아의 제안보다 매력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답이 없다면 다시 묻고 새로운 제안을 했어야 했다. 김 의장의 방문으로 UAE가 이탈리아 쪽으로 기운 것을 확인한 뒤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비상대책반을 만드는 등 부산을 떨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렇듯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일이 벌어진 것은 정권 이양기에 생긴 공백 때문은 아닌지 묻고 싶다. 협상 주체인 KAI의 사장을 교체한 이후 협상의 끈을 놓쳤다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8월 KAI 사장이 된 김홍경씨는 한나라당 선대위 중기위원장과 대통령직 인수위 경제 2분과 상임자문위원을 지냈다.

정부는 올해 말 고등 훈련기종을 선정하는 싱가포르와 T-50 수출 협상을 하고 있다. 이번에도 이탈리아와 경쟁을 해야 한다. “싱가포르 시장을 뚫기 위해 전력투구하겠다”는 다짐대로 이번에는 꼭 성공하길 바란다. 항공 후진국으로 선진국들과 경쟁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은 우리도 안다. 그래도 “신붓감(T-50)은 훌륭한데 혼수(마케팅 전략)를 제대로 준비 못해 결혼을 못 시켰다”는 변명은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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