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받아 맞춤교육 … 취업, 해외로 길 뚫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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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코하마의 ㈜LSI 개발연구소 도모리 사장(中)과 고이케 이사가 26일 대구 영진전문대학 회의실에서 올해 이 학교를 졸업한 임동우씨右를 면접하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면접을 통과하면 채용통지서를 보낼 텐데 입사하고 싶으면 수락한다는 연락을 해 주세요.” (일본 ㈜LSI개발연구소 도모리 대표)

“네, 알겠습니다. 입사는 언제쯤 됩니까.” (영진전문대학 졸업생)

26일 오후 3시 대구시 북구 복현동 영진전문대학 교수회관 2층 회의실. 이곳에선 일본 기업체의 한국 현지 채용 면접이 열렸다. 지원자 한 명을 앉혀 놓고 면접관 두 명이 20분씩 일본어로 질문하는 방식이다. 면접은 1월 1차 면접을 통과한 이 대학 졸업생 25명이 대상이었다. 지원자의 답변도 일본어로 거침없이 이어졌다. 선발 예정 인원은 10명.

일본 요코하마 ㈜LSI개발연구소의 도모리(50) 대표와 고이케 이사가 직접 면접에 나섰다. 인재 선발이 그만큼 중요해서다. 면접관은 서류를 넘기며 지원자의 성격 등을 하나하나 물었다.

◆해외로 확장시킨 ‘주문식 교육’=지원자는 이 대학이 운영한 ‘일본 임베디드(가전제품 등에 내장되는 컴퓨터 시스템)반’ 2년 과정을 마친 이들이다. 일본은 임베디드 분야가 해마다 15%씩 성장하면서 인력 부족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이에 착안한 대학은 2006년부터 일본 임베디드 업체 6곳과 주문식 교육을 협약했다. 임베디드와 일본어를 일정 수준 가르치면 2년 뒤 채용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입학 인원은 협약업체의 수요에 맞춰 40명으로 정해졌다.

대학은 지난 2년간 강도 높은 과정을 운영했다. 전공보다 일본어 교육에 더 많은 시간을 배정했다. 일본 현지인이 교육을 맡아 오후 10시까지 반복했고, 방학 때는 한 달간 일본 연수를 보냈다. 이 과정을 끌어 온 영진전문대학 장성석(47·전자정보통신계열) 교수는 “2월 졸업 전에 31명 전원이 일본에 취업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경제위기 때문에 채용 일정이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LSI는 채용 계획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기회로 활용했다. 경기가 좋아지면 우수한 인재는 대기업이 차지한다며 중소기업은 경기가 나쁠 때 우수 인재를 확보해야 한다는 전략이었다.

◆"한국학생 도전정신 강해”=면접관은 면접이 끝날 때쯤 지원자에게 숙제 하나를 던졌다. 채용통지서를 받으면 과제가 전달된다며 그걸 풀어 달라는 당부였다. 마침내 면접이 끝나고 지원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모리 대표와 면접관도 함께 일어나 지원자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도모리 대표는 “두 차례 면접을 통해 지원자들의 실력이 상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한국 학생들은 도전정신이 강한 만큼 해외로 눈을 돌리면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학적인 감성과 열심히 하려는 자세가 중요한 선발 기준”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선발되면 모두 정규직에 세계 최고라는 일본 임베디드의 연구개발직을 맡게 된다. 2년제 대학 졸업생으로는 파격이다. 연봉은 초임 350만 엔이다. 보험 등 나머지 대우도 일본인과 똑같다.

면접을 본 임동우(26·대구시 신암5동)씨는 “외국에 나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 이 과정을 마쳤다”며 “일본어는 이제 대화를 주고받는 데 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영진전문대학은 임베디드 외에 호텔·자동차설계 등도 일본 현지 기업이 이 대학을 방문해 채용 면접을 벌여 올해 졸업생만 일본으로 82명을 취업시켰다.

이 대학 이윤희(60·공학박사) 부총장은 “최근 국내 인력 수급이 불안해지면서 해외로 눈을 돌려 주문식 교육을 실시한 게 취업의 새로운 돌파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송의호·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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